2013년 10월 24일(목)은 나섬과 내 인생에 있어 새로운 의미를 남긴 날이다. 지난 내 삶과 사역에 작은 흔적 하나를 남긴 날이다. 호잣트가 목사안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호잣트의 목사안수는 나와 나섬에게 무슨 의미였기에? 목사 안수식이 있던 날 나는 시간에 맞추어 무학교회에 도착했다. 며칠 전부터 호잣트의 목사 안수를 생각하며 묵상하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었다. 그와 나에게 오늘의 목사 안수식은 남다른 고백과 삶의 열매를 말하는 것이다. 얼마나 아프고 힘든 시간들이었을까. 하늘과 우리만 아는 수많은 번민과 절망의 시간들이 있었다. 중간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픈 유혹도 있었다. 과연 내가 아니 호잣트 자신마저도 이런 생각들로 때론 방황하고 의심하며 살아온 세월이다. 나는 안다. 호잣트에게 오늘의 목사 안수식은 결코 일회적 이벤트가 아니다. 그에게 오늘은 삶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목사 안수식이 시작되었다. 노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안수 예배는 참여한 청중과 당사자 모두에게 감격적인 시간이다. 그러나 누가 알까? 가장 감격적이며 감사한 사람은 나와 호잣트일 것이다. 안수를 위해 강단에 올라갔을 때 나는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안수 기도가 끝나고 나는 호잣트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등켜안고 울고 말았다. 호잣트는 계속해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진정 축하하고 잘했다고 했다. 그는 내 가슴에서 울었고 나는 그의 가슴에서 울었다. 손수건을 꺼낼 겨를 없이 우리는 각자의 성의에 눈물 자국을 남겼다.
모든 안수 예배가 끝나고 나는 어느 기독교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들이 내게 물었다. 어떤 느낌이었느냐고. 바보 같은 질문이다. 당연한 대답을 알면서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는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26년 전 목사 안수를 받던 날보다 훨씬 감동적이며 큰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 했다. 정말 그랬다. 내게 오늘 호잣트의 목사 안수는 나 자신이 목사가 되던 날보다 더 기쁘고 감사했다. 그는 내 영적인 아들이다. 그는 내 삶과 사역의 열매이다. 때문에 그의 삶과 나의 삶은 깊은 관계가 있다. 그의 성공이 나의 행복이며 그의 절망이 나의 눈물일 수밖에 없다. 그가 기쁘고 감사하면 나는 안아주며 축하해주고, 그가 울면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그의 삶은 곧 나의 삶이며 그렇게 우리는 하나로 살아왔다. 그가 공부하는 시간을 돌아보면 하루하루가 고역 이었을 게다. 그러나 그와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돈이 없어 학비를 걱정하기도 했다. 생활비 걱정도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왔다. 광야의 삶에 주어진 은혜로 공부하고 생존했다. 그렇다! 그와 나는 생존의 숨막히는 삶을 살았다. 그것은 절박함이며 위기였고 때론 도망가고픈 시련이었다.
우리의 눈물에는 고백과 은혜가 숨어 있다. 고난과 시련의 삶에 대한 회한이 있다. 그는 나를 알고 나는 그를 안다. 둘 다 한마음으로 하늘의 아버지께 고맙다고 되뇌었다. 정말 감사했었으니 말이다. 그랬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하는 은총의 결과이다. 누가 이런 삶을 살아보았겠는가? 호잣트의 목사 안수는 축하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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