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무는 방 한쪽 벽면에는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 그러나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이 말은 돌궐족의 장군 돈유쿠크의 비문에 새겨진 글인데 나는 그 글귀를 너무 좋아해 내방에 붙여놓고 있다. 돈유쿠크 장군은 640년대에 태어나 당나라와의 전쟁 등 많은 전쟁에서 탁월한 전적을 남긴 돌궐족이 자랑하는 장군이다. 그의 업적은 몽골 울란바토르 외곽 테렐지 국립공원을 가는 길목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의 비문에 새겨진 이 글귀를 생각하곤 한다.
내가 특히 이 글귀를 좋아하는 이유는 성을 쌓지 말고 길을 내라는 돈유쿠크의 말이 유목민족의 정신과 철학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귀는 오늘날 교회와 나섬공동체의 방향과 목회 철학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성서가 가르치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성안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르쳐 지시하신 땅을 향하여 도전하고 나아가라는 말씀과도 같은 의미다. 430년을 애굽에 붙잡혀 종노릇 했던 백성들을 탈출시켜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와도 통한다.
성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떠나갈 것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창세기부터 마지막 성서를 접는 순간까지 일관되게 가르치시는 진리의 말씀이다. 기독교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진보적인 가치를 가진 종교다. 성(城)을 쌓지 말고 길을 내는 자로 살아가도록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은 건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기득권과 자랑거리 그리고 고정관념으로 뭉쳐진 과거의 습성과 문화를 말한다. 우리의 가치관까지도 내어 버림으로 길을 향한 여정에 용기를 가지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무언가에 붙잡혀 있는 듯하다. 오래된 이념과 율법, 교회관에 대한 것들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성을 쌓는 곳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선교적 사명을 가진 공동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회가 성을 쌓기 시작하면서부터 교회는 율법과 이념에 종노릇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교회는 교인들을 율법과 이념의 지배하에 붙잡아 두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Nazism)과 무솔리니의 파시즘(Fascism)같은 극우적 민족주의가 바로 그런 종류의 이념이다. 그들은 자기들만 옳다는 폐쇄적 가치관을 갖고 있었으며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폭력으로 강요하며 지배하려 하였다. 교회를 정치적 목적의 이념집단으로 전락시키는 것도 문제다. 교회의 리더들이 교회와 교인들을 지배하며 그들의 의식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한쪽으로 몰고 가는 것도 그렇다. 성(城)을 부술 수 없다면 성안에서 탈출하라. 성안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길 위의 여행자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이 나아갈 바이다. 고정관념의 성안에서 길 위의 자유인으로 나설 때가 되었다. 성안에서 길 위로 올라오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막상 성을 쌓는 것을 포기하고 길 위의 나그네로 올라서는 순간 드디어 그는 자랑스러운 천국의 시민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올해에도 나는 몽골에 간다. 나는 또 돈유쿠크 장군의 비문 앞을 지나며 그가 남긴 말들을 생각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이동하며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아갔던 이야기는 돈유쿠크의 명언과 유사한 맥락을 보여준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성을 쌓거나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하나님께 의지해 유목적 삶을 살았다. 나는 그래서 올여름에도 돈유쿠크의 비문 앞에서 다시 나 자신과 교회를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