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고백한 대로 살아왔다. 내가 고백한 것들이 오늘 우리 공동체의 존재이며 실체다. 나는 고난 앞에 무릎 꿇지 않았고 위기를 기회라 불렀다. 예수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고백하며 살았고 '나는 못 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와 함께 일할 수 없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었고 내가 가면 곧 길이라 말했다. 길을 만드는 삶을 사랑했고 그것이 나를 살게 한 힘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만류하던 몽골학교의 서울시교육청 인가도, 학교의 건축도 마찬가지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고 반박했고 끝내 인가를 받았고, 학교를 건축하였다. 그 학교가 오늘 여기에 있다.
눈이 안 보이고 몸은 성한 데가 없어도 언제나 긍정적인 고백을 하려 애썼다. 내 힘은 미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했고,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내 안에 계신 주님만은 하실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한없이 부족하고 미련한 사람이다. 건강도 잃었고 주변에 아는 이도 많지 않다. 외로운 광야의 나그네로 두렵고 떨리는 거친 들에서 야생의 삶을 살았다. 때로 무서운 맹수도 만났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의 모함도 받았다. 그때마다 절망도 했고 차라리 죽여달라던 엘리야처럼 나도 주님께 그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마침내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진정한 영성은 포기하지 않고 참아내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성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내 자리 내 존재의 자리가 영성의 증거다.
나는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 싶었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바울의 말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당하는 고난 앞에서 불평하며 원망했고 그들이 내뱉은 불평과 원망은 고스란히 그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들의 고백대로 그들 모두 광야에서 죽어야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말은 열매로 나타난다.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꾸고 인생을 만든다.
죽을병이라는 암이 내게 찾아왔다. 내게는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이기에 처음에는 당황하고 힘들었지만,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하니 나의 마음이 달라졌다. 내게 주신 암은 나를 죽이는 암(癌)이 아니라 살리는 암(岩)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다. 만약 암이 아니라면 후일 더 큰 재앙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은 나에게 결코 저주가 아니라 은혜의 선물임을 믿는다.
하나님은 내게 암을 주신 것이 아니라 피할 바위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나는 내게 주신 암을 피할 바위 즉 피암(避岩)이라 부르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날아 오는 수많은 공격을 피하게 하시려고 피할 바위를 주신 것이다. 나는 그 바위 밑으로 숨어 안전할 것이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내게 주실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이다.
나는 다시 일어나 고백의 은혜로 살아났음을 간증할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다시 고백적 삶을 살기로 했다. 그것만이 내게 주신 것들을 온전히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태도라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사랑하심으로 좋은 것을 주신다. 비록 오늘은 고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으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언제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