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어도 잠을 자는 아이들-나섬어린이집과 다문화아이들의 이야기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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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없어도 잠을 자는 아이들-나섬어린이집과 다문화아이들의 이야기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니?"
"..."
"엄마는 어디 갔어?"
"..."

아자(3살)는 지난 2월에 우리 나섬 어린이 집에 들어왔다. 몽골에서 온지 얼마 안되어 다시 엄마, 아빠와 헤어져 어린이집에 보내진 것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실공장에 다니는 아빠와 엄마는 아자를 우리 어린이 집에 맡겨두고 일을 하고 있다.  
아자는 일주일 동안은 엄마가 없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번만 보는 거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경험은 그것이 전부일 뿐이다.
아자가 우리 어린이집에 처음 왔을 때에 아이는 무언가 두려움에 가득한 표정이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엄마와 헤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도 가련하다. 엄마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아이는 본능적으로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엄마와 아이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태어나자마자 노마드 유목민의 삶을 고단하게 배우기 위함일까? 아이에게 과연 노마드적 삶은 태생적 운명인가? 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노마드가 되어야 하는가? 몽골의 초원도 아닌 낯선 한국 땅에서 말이다. 차라리 몽골의 초원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금 여기는 몽골이 아닌 한국이 아닌가?  
몽골의 아이는 어차피 그렇게 유목민의 피를 운명처럼 갖고 태어나는가보다.
21세기에도 유목민의 아이는 여전히 유목민이 된다.

아자가 처음 우리 어린이 집에 왔을 때에 아이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은 것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국말도 몽골말도 아이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언어다. 분명 몽골 아이임에도 아이는 몽골말을 몰랐다. 엄마가 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였다. 한국에 온지 얼마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는 한국말도 모른다. 한국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만이 아이가 배운 유일한 언어이다. 아니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리잡은 언어였다. 스스로 자리  잡은 언어... 배우지 않았고, 가르쳐준 사람이 없어도 배우는 언어가 침묵이다. 고독한 언어의 기술이다.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그렇게 고독했다. 유목민의 아이로 다시 유목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의 운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한 것이었다.  

"목사님, 아자가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이라는 말과 '아니'라는 말을 하네요."
"몽골말은?"
"몽골말도 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몽골 선생님에게서 몽골말을 배우더니 금방 하네요."

어린이집 교사가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내게 기쁜소식(?)을 전한다.

아이는 침묵을 깨고 한국말과 몽골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처음 하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말보다 '선생님'이라는 말을 먼저 배운 것이다. 엄마보다 선생님을 먼저 안 아이는 엄마와 선생님을 혼동하기 시작했다. 일주일만에 만난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오면 아이는 선생님 뒤에 숨어 엄마와 집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배운 말이 '아니'라는 말이 아닐까?

내가 처음 우리 나섬 어린이집을 개원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또 무슨 일을 벌이느냐며 매우 경계하는 듯하였다. 강남의 어떤 유치원 원장을 했었다는 이는 어린이집을 개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찾아와 무척이나 생뚱맞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문화 이주자의 아이들이 왜 이곳에 와야 하는지도 모르는 정말 무지한 이들이 늘어놓는 유아교육론에 나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예쁘고 돈많은 유치원 아이들만을 생각하는 유아교육의 전문가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 노마드 아이들에게 유아교육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말이다.
우리 어린이집에 한국의 유아교육으로 무장된 고상한 목소리의 원장님은 없다. 자기가 최고의 유아교육자라고 자랑삼아 자신이 운영하던 유치원을 자랑하는 세련된 원장님도 없다. 좋은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배웠다고 한국의 유아교육을 부정하는 공부 잘한 선생님도 없다. 
오히려 우리 어린이집의 선생님들은 무척이나 소박하다 못해 촌스럽다. 정말 촌스러움의 극치다. 촌스러움과 투박함이 전부인 우리 몽골 선생님들은 그러나 눈물이 많아서 좋다. 
원장님은 촌스러운 시골 아줌마, 부감님 신노을 전도사는 소박하지만 속이 따듯한 이모, 안인숙 선생님은 촌스러움과 투박함을 겸비한 고모, 몽골 선생님 보인나는 무서운 할머니 선생님이다. 밤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자는 오통튜야 선생님은 엄마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늙은 엄마 선생님이다.  
모든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내 보일 것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가장 사랑이 많고 아름다운 엄마들이다. 늙은 엄마들, 아니 할머니 같은 엄마 선생님들이다.

엄마에게 가는 날이 싫어지는 것은 늙은 엄마 선생님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젊은 엄마가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일주일에 한번 보는 엄마는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의문 때문이다. 노마드 몽골 아이들에게는 늙은 엄마 선생님이 진짜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2007년 1월, 나는 나섬 어린이 집을 개원했다. 몇 개월의 준비기간을 보내고 시작한 어린이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믄 다문화 어린이집이다. 아니 어쩌면 가장 처음으로 시작한 어린이집인지도 모른다. 특별히 몽골 어린아이들과 다문화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어린이집이라는 면에서는 처음일 것이다. 30평 남짓한 작은 빌라 1층에서 몽골아이들과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15명이 함께 어울려 산다. 이건 단순한 어린이집만의 의미가 아니다. 

내가 몽골 유아들을 위한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전부터이다. 재한몽골학교를 1999년 12월에 시작하고 차츰 몽골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부터다. 
1학년부터 9학년까지 있는 재한몽골학교에 어느 날 아주 작은 몽골 아이가 찾아왔다. 엄마의 손을 잡고 찾아온 아이는 금방 보아도 유치원에나 갈 수 있는 아이다. 갓 기저귀나 떼었을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아이를 받아달란다. 1학년으로 받아달라는 것이다. 안된다고해도 몽골 엄마는 그저 졸라대기 시작한다. 만약 이 아이를 우리 몽골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자기는 일도 못하고 너무 어렵게 살아야 한다고 애원한다. 

"안돼요. 다른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어요. 이 아이는 유치원에 보내야 해요."
"목사님, 만약 우리 아이를 여기서 받아주시지 않으면 저는 정말 어려워요. 한국 유치원에 보내봤어요. 그런데 그곳에서는 말도 안통하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많아요. 우리 아이는 그곳에서 한국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아이는 언제나 외톨이가 되요. 그리고 사실은 돈이 없어서 더 이상 보낼 수도 없어요. 너무 비싸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아이는 늦게까지 유치원에 있어야 해요. 제가 공장에서 너무 늦게 끝나기 때문에 그때까지 우리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런데 한국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데요. 그러니 여기밖에는 갈 곳이 없어요."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단다. 여기가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야 한단다. 이곳이 몽골아이들의 마지막 선택지라는 것이다. 이 눈먼 목사가 작은 노마드 몽골 아이들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나에게 대안이 되라고 하시는 것일까? 갈 곳 없는 나그네들에게 왜 나는 마지막 선택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린이집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돈도 없다. 당장 집을 얻어야 할 아무런 능력이 없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을 어떻게 고용할 것이며, 그들에게 무슨 돈으로 월급을  준단 말인가? 몽골 엄마들에게서 받는 원비는 아이들 밥값도 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한국아이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지원도 없다. 단 한명의 교사월급도 받을 수 없는 교육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어린이집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내가 하지 않는다고 나를 혼낼 사람도 없다. 이 어린이 집을 하면 내가 성공하고 자랑할 어떤 이유도 없다. 나는 당장 고통을 받아야 하고 고통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우리 스탭들도 모두가 부정적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만약 내가 어린이집을 시작한다고 해도 우리 어린이집은 다른 곳과는 다르다. 일주일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 월요일에 들어온 아이는 토요일에 나가는 탁아소가 되어야 한다. 어린이집을 넘어 탁아소다. 무슨 재주로 이 아이들을 재우고 먹이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아이들이 밤중에 울거나 아프면 어떻게 하나? 아이들이 감기나 열이 오르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쯤은 나도 아이들을 키워봐서 잘 아는 내용이다.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다. 명예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다. '맨땅에 헤딩'이 바로 이런 것일까? 하긴 우리 나섬의 모든 프로그램은 이렇게 최초로 시작된 사역들이다. 
그런데 자꾸만 해야한다는 생각이 가득해진다. 시작하면 그만 둘 수없는 사역이다. 십자가라면 십자가다. 지고 싶지 않은 십자가다. 그런데 자꾸만 짊어지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인가? 몇 개월을 두고 고민하던 가운데 결단을 했다. 어차피 죽는 길을 선택했다. 죽는 마당에 조금 빨리 죽는 것 뿐이다. 조금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는 것 뿐이다. 이 정도가 무서웠다면 나는 지금 여기 존재할 이유가 없다. 내가 선택하고 짊어지기로 한 인생이다. 노마드가 좋아서 그들을 위하여 나 또한 노마드처럼 살다가 가겠다고 결단하고 시작한 삶이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어차피 손해볼 것 없는 나그네 인생을 살아왔다. 아무 것도 없이 길 떠난 나그네처럼 이제 망해도 좋다. 망할 것도 없어 무서움도 없다. 그런데 왜 자꾸만 주저하는가? 왜 주어진 십자가를 무서워하는가? 

이쯤되니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무조건 나섬 어린이집을 시작한다. 아무 것도 없이 우리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고, 그렇게 어린이집을 시작했다. 무일푼의 사역이다. 한국 아이들이라면 한국 부모들로부터 원비라도 비싸게 받고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지원도 받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런 지원도 관심도 없다. 그냥 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몽골과 다문화 아이들의 어린이집을 시작한 지 2년 반이 흘렀다. 우리 아이들은 처음부터 그러했듯이 월요일이면 어린이집에 오고 토요일이면 다시 엄마에게 돌아간다. 쉼없이 돌아가는 나섬어린이집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자라고 있다. 엄마가 없어도 울지 않는 아이들이 된 것이다. 너무도 어린 아이들이 노마드적 삶에 익숙해진 것이다. 아이들은 노마드가 되었다. 몽골에서만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계가 유목민으로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몽골의 초원에서만 유목민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유목민이 있다. 우리 나섬공동체와 어린이집에는 그런 유목민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나이가 많은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유목민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정말 유목민의 시대가 된 것이다. 

아자는 이제 한국말과 몽골말을 곧잘 하게 되었다. 벌써 이중언어를 하게 된 것이다. 저렇게 자라면 아이는 금방 한국화 된 몽골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몽골 엄마와 한국인 엄마 선생님을 둔 매우 특별한 아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될 때쯤이면 아이는 무척이나 한국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친한국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아자가 몽골의 지도자가 되면 우리 선생님 엄마들은 몽골의 무엇이 될까? 그때에도 아자는 우리 한국인 선생님 엄마들을 엄마라고 부를 것이다. 아자에게 한국은 엄마의 나라다. 

나섬어린이집의 또 하나의 중요한 미래 단서가 있다. 그것은 기독교교육이라는 너무도 소중한 가치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기도와 찬양을 배운다.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심정으로 맑고 깨끗한 몽골과 다문화 아이들의 영혼에 복음의 수를 놓는다. 예수의 마음을 저 아이들에게 그려 넣는 것이다. 아이들은 스폰지처럼 선생님 엄마들이 가르쳐주는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선교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이 어린이집을 감당하여야 하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각지대의 유목민 아이들을 위한 나섬 어린이집을 시작한 것인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복음이 저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그 민족에게까지 전파되는 꿈 때문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처음 어린이집에 찾아왔을 때에 우리 아이들은 한결같이 기독교를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예수가 누구인지, 교회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온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 속에 예수라는 이름이  조금씩 의미있게 새겨질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작은 아이들이 부르는 복음성가 속에서 나는 눈물이 날정도로 감격하고 감사한다. 아이들이 성경구절 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 삶의 고통이 행복한 것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분명히 기적이다. 이것은 가장 모범적인 기독교 교육이며,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세계선교다. 나는 지금 광나루 한쪽 귀퉁이 작은 빌라에서 세계선교를 하고 있는 중이다. 누구도 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않았던 새로운 선교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 선교의 대안이며 희망이다. 우리안에서 대안과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 세계선교의 대안과 희망의 못자리인 것이다. 

아이들이 기독교교육으로 아름답게 자라면서 어느새 그 부모들도 감동을 받는다. 자기 아이들이 보고 배운 성경말씀의 생명력이 그 부모들에게까지 전달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 나섬어린이집에서 자란 아이들이 몽골의 복음과 기독교 문화를 세울 가장 소중한 리더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 아이들이 자라면서 몽골은 변화될 것이다. 지금은 작은 아이들이며,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들일지 모르지만 어느새 큰 나무가 될 것이다. 분명히 그 민족을 품고 세계를 향해가는 복음의 일꾼들이 될 것이다.  
몽골은 세계선교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다. 그 몽골이 복음으로 변화되어야 세계선교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몽골선교의 절대적 당위성이다. 그 몽골의 변화가 지금 이 땅의 한구석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문화 시대의 기독교 교육과 선교의 핵심가치인 것이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매우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아자는 예수라는 이름을 유목민의 유전자속에 간직하기 시작했다. 노마드 예수라는 이름을 저 아이는 너무도 일찍이 영혼 속에 새겨둔 것이다. 이것이 노마드에게만 주어진 축복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신 하늘의 은혜인 것이다.

나는 나섬 어린이집에서 몽골의 미래를 본다. 몽골의 선교와 변화를 읽는다. 이미 씨앗은 던져졌고, 그 씨앗은 싹을 내었다. 자라고 꽃이 피는 환상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그 열매는 하나님이 맺어주실 것이다. 그 열매는 우리 민족과 몽골이 함께 나누어 가질 것이다. 그날 누가 이 씨앗을 뿌렸는가 묻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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