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부활하셨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에 사람들은 그가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다. 제자들이 가장 먼저 절망했으므로 뿔뿔이 흩어졌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인간사란 그런 것이겠지만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의 십자가 처형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눈치 보기에 급급하였다. 유월절의 호기로움도 김빠진 탄산수처럼 그저 맥없고 맛없는 기념행사에 불과했다.
그러던 예루살렘에서 놀랍고도 믿기지 않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예수의 부활사건이다. 그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단 번에 모든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죽은 자의 부활은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음으로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무리에게 복음이 되었다. 드디어 예수의 부활이 갖는 의미는 예루살렘의 회복에서 인간의 회복으로 이어졌고, 인간의 회복에서 역사의 회복으로, 정의와 진리의 회복으로 그 의미의 영역이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적용하며 살고 있는가? 나에게도 예수의 부활은 특별하다. 내 눈의 회복이며 몸의 회복을 넘어선 것이다. 건강을 잃은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라는 속설을 나는 믿지 않기로 했다. 내 연약함 속에 부활하신 이가 들어오시면 약함은 강함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다. 내 안에 부활하신 이가 임재하시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사시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내 연약함이 강함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렇게 변화한다. 부활하신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는 것이다. 세상과 역사와 자연 속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의 영을 만나야 한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부활의 영이 임하니 메말라 부스러질 지경의 가지에 생명의 부활이 일어난다. 죽은 대지가 살아나고 마른 풀이 살아난다. 내 죽은 마음과 세포에 새로운 생명수가 흐르기 시작하니 죽은 신경이 회복된다. 꼼짝도 못하던 팔과 다리에 부활의 영이 임하면 팔과 다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한다.
한반도의 갈라진 역사와 분단된 허리에 부활의 영이 임하니 부러진 허리가 복원된다. 나아가 만주벌판과 몽골초원이 이어지고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의 사라진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해에서 지중해까지 잊혀지고 망가진 길이 연결되어 21세기 새로운 실크로드가 만들어진다.
나는 예수의 부활을 통하여 나 자신과 역사, 인간의 삶과 공동체에 새로운 변화와 생명의 복원이 일어날 것을 믿는다. 이것이 내가 깨닫는 부활의 의미다. 오늘은 새벽에 이런 기도를 드렸다. '부활의 예수시여! 어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리고 하루속히 신목사와 저에게 부활의 은총을 허락하소서!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과 역사와 삶 속에 예수 부활의 영과 능력이 임하시옵소서.'
나는 한 메마른 가지를 보았고 그 메마른 가지에 생명의 회복이 일어나 꽃이 만개하는 환상을 보았다. 분명 꽃이었고 너무 아름다워 탄성이 흘러 나왔다.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부활이었다. 부활이 일어나는 꿈이었다. 나는 부활의 꿈과 환상을 보았다. 예수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것임을 믿는다. 이것은 확실한 내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