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을 잃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나섬에는 나 같은 아니 나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신 목사다. 신 목사는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내가 루게릭을 아는 것은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 박사 때문이다. 남의 고통에 인간은 공감하지 못한다. 영국의 물리학자 한 사람이 앓고 있다는 루게릭을 내 옆의 사랑하는 이가 앓을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희귀병은 나하고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기우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에게는 그런 기우가 일어난다. 그것이 나에게는 실명으로, 신 목사에게는 루게릭으로 찾아왔다.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우리의 삶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나와 신 목사는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 죽을 수도 그렇다고 사람답게 살 수도 없는 비루한 인생이다. 차라리 사라지고 싶은 자신의 존재를 매일 바라보며 단 하루도 눈물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산다.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죽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아야 하는 나의 절망과 아픔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아침마다 아내에게 신 목사에게서 무슨 연락이 없었느냐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더 이상은 말로 소리로도 대화할 수 없으니 신 목사의 근황을 유일하게 카톡으로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카톡을 못하고 신 목사는 말을 못하니 우리의 대화는 아내의 카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고 신 목사는 더 이상 소리를 내어 말을 할 수 없으니 전화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나마 아내의 카톡이 있어 신 목사의 근황과 하루하루의 삶을 듣고 함께 아파하고 기도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언제 끝이 날는지 모른다. 신 목사의 손가락의 힘이 언제까지 남아있을 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 목사의 손가락마저 힘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이제 서로 볼 수도 말로 소통할 수도 없다. 누가 우리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께 묻고 싶고 따지고 싶지만 그러다 내 작은 신앙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나섬이 작은 공간을 만들고 첫 예배를 드린 지 벌써 24년이 되었다. 구로동과 뚝섬시절을 지나 강변역 건물 지하에 우리만의 공간을 만든 날을 생일날로 정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떻게 그 긴 날을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를 고통과 감격, 눈물과 절규, 그리고 감사함으로 살다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앞으로 더 얼마나 살아야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아야 하리라. 끝까지, 죽는 날까지 충성하라 하셨으므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산다. 그것이 전부다. 갑자기 신 목사가 생각난 것은 그 때문이다. 아프지만 죽도록 충성하라 하셨으니 죽는 날까지, 손가락에 힘이 다하여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날까지, 아니 그 이후에 눈빛으로라도 글을 쓰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우는 소리 웃는 소리라도 내어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우리의 존재방식은 다르다. 아프고 절망스러워 하루하루 죽을 만큼 힘이 들어 몸부림치며 살아야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충성의 의미를 새기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나섬과 나, 그리고 신 목사가 사는 방식이다. 우리는 일등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끝까지 살아남는 삶을 살려는 것이다. 단 한숨의 숨이라도 쉴 수 있다면 끝까지 버티고 고통 속에 이를 악물고 눈물로 밤을 지새울 것이다. 끝까지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래서 신 목사에게 그렇게 살자고 말하려 한다. 우리 죽는 날까지 이를 악물고 살아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