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지금의 한국교회와 카톨릭을 이렇게 비유했다. 카톨릭 신부들은 공무원이고, 교회 목회자들은 자영업자들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미사를 드리지 않아도 문제가 없으나 자영업자 목사들은 예배를 꼭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를 않는다. 왜 일까? 아니라고 말할 자신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 말에 일정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이유에 대해 그 자영업이라는 단어가 말문을 닫게 한다. 그렇다. 한국교회의 개교회주의가 이렇게 만연한 상황에서 교회에는 철저히 각자도생의 원칙만이 남는다.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면 사라지는 자본주의 경쟁체제 안에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슬프고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자영업 목회자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또 곱씹어 본다. 그런데 그 말을 곱씹고 또 씹어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영업자들이다. 어느새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맞는 말이다. 자영업 교회와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교회 안에서도 들려온다. 교회가 문을 닫기 직전이다. 교인들이 떠나고 헌금이 줄고 임대료 고민으로 밤잠을 설쳐야 하는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형 재벌교회야 아직 그렇게 큰 걱정이 없겠지만 한 주 한 주 헌금으로 버티던 교회들은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이 꼬락서니를 당하려고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었단 말인가? 참으로 화가 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밥맛이 없다. 교인들 눈치 보느라 소신 있는 설교 한번 할 수 없이 살았던 목회자들이 이제는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우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가난한 목회자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나 고통스러울지 미처 몰랐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예배를 고집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이 참 용기 있어 보인다. 아니다. 애처로워 보인다. 그렇게라도 해서 버티려는 목회자들의 고집스러움이 우울해 보인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신념은 신앙인가 아니면 맹목인가? 차라리 이 바닥을 떠나야겠다. 차라리 목회자라는 구차스러운 삶을 더 지탱하는 것은 비겁함을 넘어 비굴함이다.
코로나 사태가 오래갈지도 모른다 한다. 오래가면 그만큼 고통의 깊이가 더 깊어질 것이다. 부도가 나는 회사들처럼 교회도 부도가 나고 목회자들은 거리로 나가야 한다. 전형적인 자영업자의 신세다. 그러니 교회를 자영업에 빗대는 빈정거림이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코로나 이후의 세상과 교회가 두려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미 세상에 속 들킨 것 같은 교회가 더 이상 무슨 힘으로 선교를 하고 목회를 하겠는가 말이다. 자영업 정도의 신세로 전락한 교회와 목회자가 무슨 명분으로 세상을 향해 설교를 하고 예배를 드리라 하겠는가? 코로나는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온다. 거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할 것 같은 거대한 변화의 파도가 교회를 덮고 있다. 교회와 목회자의 자리는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다.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다.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교회와 목회자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상이 된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이 그렇게 심판하시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용기일 것 같다. 다시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놓으며 처음 받았던 그 순수함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결단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으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놈이 또 우리를 덮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