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학교를 시작한지 만 20년이 되었다. 1999년 외환위기의 상황에서 시작한 몽골학교가 어언 20년이 되었으니 참으로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시력을 다 잃었고 머리도 하얗게 세었으니, 내 인생의 가장 소중했던 젊음이 모두 몽골학교에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밖에 나가면 중늙은이 취급을 받아야 할 정도로 늙어버렸지만 그런 내 겉모습이 몽골학교의 오늘을 만들었다면 나는 결코 후회스럽지 않다. 내가 이렇게 늙어버린 것이 몽골학교를 세우느라 고생한 때문이라 한다면 지금보다 더 늙은 모습이어도 괜찮다. 그만큼 내게 몽골학교는 무척 소중하고 보람 있는 사역이다.
이주민 사역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몽골아이들, 그 아이들과 함께한 작은 공부방이 오늘의 몽골학교를 있게 했다. 당시 홀트아동복지회의 회장이셨던 송재천 목사님과 남대문 교회의 이일모 장로님은 잊을 수 없는 분들이다. 송 목사님은 몇 해 전 소천 하셨고 이 장로님은 필리핀에서 열정적인 삶을 살고 계시다.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의 도움과 기도가 있었음으로 몽골학교가 작금의 멋진 학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몽골학교를 만들고 이끌어 오면서 교육이야말로 가장 좋은 선교의 전략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이 잘되는 일이라면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 비록 종교가 다를지라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다가서고 찾아간다. 맹자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무슬림도 자식을 위해서는 기독교 교육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했다. 몽골학교를 통하여 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교육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길임을 또한 발견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게 선진국이 되고 잘 살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교육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교육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늘과 같은 사회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있어서도 교육이 중심이었다. 학교를 통해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장하고 자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회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초기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했던 일 중 가장 잘한 것이 바로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시킨 일이다. 스크랜튼 선교사가 1886년 처음으로 이화학당을 개교하고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세웠으며 언더우드가 지금의 연세대학을 세운 것처럼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교육 사업에 전력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주민의 시대에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이주민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하는 것은 다문화 시대의 요청이며 세계선교의 가장 바람직한 전략이다. 나는 이제 교육의 힘을 더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에 학교를 세우려고 한다. 뉴라이프 선교회를 통하여 동대문에 비전센터를 세우고 처음 한글학교를 시작한 것은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동대문을 중심으로 뉴라이프 사역과 교육 선교의 영역을 확장하는 꿈을 꾼다. 11월이면 동대문 뉴라이프 비전센터를 확장하고 감사예배를 드릴 것이다. 여섯 개의 교실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교육선교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것이다. 그곳에 더 멋진 학교를 시작하려한다. 앞으로 더 많은 뉴라이프 선교사들이 이주민과 그 자녀를 위한 교육에 헌신하도록 돕고 안내할 것이다. 나아가 역파송 선교사들과 함께 선교지의 상황에 맞는 학교를 세울 것이다. 그 곳에 뉴라이프 선교사를 파송할 것이다. 이미 베트남에 파송된 문영일 선교사 부부는 베트남 청년들을 대상으로 축구교실을 시작하였다. 앞으로 그 축구교실에 한글교육과 컴퓨터 교육이 덧붙여지면 멋진 학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터키에 이란 난민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세워달라는 호잣트 선교사의 요청도 이제 고려할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내 마음은 너무도 설렌다. 몽골 평화캠프가 있는 거르더크 지역의 아이들과 지역주민을 위한 평화학교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곳에서도 이미 한글학교가 시작되었다. 판카즈 목사가 있는 북인도에도 히말라야학교를 만들기로 계획하고 있으니 우리의 교육 선교는 멀리멀리 그 지평이 확장될 것이다.
필리핀 행복학교는 이미 시작되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므로 감사하고 감사하다. 나는 최근 또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베트남 학교를 만드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학교를 비롯한 아시아 국제학교의 설립을 꿈꾼다. 이미 교육청으로부터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를 위탁받아 작게나마 운영하고 있는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부담은 되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흥분하고 설레기 시작했다. 아직도 내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 이런 설레임은 운명이다. 모든 선교는 학교를 세워 교육을 통하여 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세계가 나를 부르고 한국의 수많은 이주민과 아이들이 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