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사역이 내게 큰 의미를 주는 것 중 하나는 개별 국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역파송 선교사를 보내고 사역을 함께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이 섬기는 나라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몽골학교와 몽골문화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몽골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99년 몽골학교의 시작과 2001년 몽골문화원을 설립하면서 몽골에 대해 나름의 일가견을 갖게 된 것이다.
그 후 역파송 선교사를 공부시키고 파송시키면서 베트남과 인도, 터키와 이란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 중 베트남은 최근 내게 가장 큰 비전을 가져다 준 나라다. 얼마 전 재한 베트남 학교를 세워보자는 제안을 받고부터 요즘은 완전히 베트남에 모든 생각이 집중되어 있다. 베트남은 인구가 1억 명에 육박하는 큰 나라다. 땅의 크기는 한반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베트남은 우리와 너무도 깊은 관계가 있는 나라다. 오래전 우리나라의 화산 이氏 성을 가진 이들이 베트남에서 온 초기 이주민이라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에 참전한 경험도 있다. 굳이 그 전쟁에 대하여 언급할 이유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작년에 베트남 중부 다낭 인근에 하미라는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은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 해병대가 주둔하면서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아픈 기억을 가진 곳이다. 물론 민간인 학살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때는 전쟁의 상황이었고 많은 우리 군인들이 베트공이라는 게릴라들에 의하여 무참히 희생을 당하였으며, 민간인과 게릴라군을 구별할 수 없는 극도의 긴장과 분노의 상황 속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고 얘기한다. 나는 그 전쟁의 고통이 얼마나 불행한 경험이었는지 이해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죽여야 했고 또 누군가는 의미 없는 희생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비극적 악이다. 그러나 나는 하미 마을을 찾아가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역사적 부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2018년 베트남에 투하 선교사를 파송하고 베트남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대하여 공부를 시작했고 베트남에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베트남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를 알게 되었다. 2019년 7월에 뉴라이프 선교회의 문영일 선교사 부부를 다낭 지역으로 파송하고는 베트남이 더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서서히 내게 일어났다. 베트남에서 선교적 기업을 하고 있는 청년 사업가 나 대표를 비롯하여 베트남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중 하나가 베트남 학교에 대한 제안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베트남 사람들과 그 자녀들, 그리고 결혼 이주민으로 들어온 베트남 여성의 자녀들까지 나는 운명처럼 베트남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묻는다. 나를 언제까지 쓰실지 몰라도 다시 새로운 비전을 품는다. 재한 베트남 학교의 설립과 다낭 지역에 베트남 행복학교의 설립, 그곳에 뉴라이프 시니어선교사의 파송에 이르기까지 큰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더 나아가 베트남 선교센타를 세워야 하는지도 고민 중이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 베트남과 내게 운명처럼 주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얼마 전 장로회신학대학과 맺었던 약속이 수포로 돌아갔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이주노동자, 결혼 이민자, 유학생 등 다양한 이유로 들어오는 베트남 사람들이 나를 부른다.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접한 바울의 고민이 느껴진다. 인생도 그렇지만 선교도 운명처럼 만나진다. 선교와 목회는 운명 같은 섭리가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베트남이 지금 내게 그런 느낌을 준다. 몽골처럼 베트남도 내게 운명처럼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