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섬의 목회를 한 지 어언 27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수많은 나그네들을 만나고 함께 웃고 울며 살아왔다. 몽골에서부터 인도, 이란, 베트남, 필리핀, 중국, 네팔,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온 나그네들을 많이도 만나 보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국가마다 민족성이 다르고 독특하다는 사실이다. 나그네는 그들이 어디서 왔느냐에 따라 성격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니까 언어가 다르듯 삶의 형태와 문화가 너무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된 모습이 있는데 바로 ‘자존심’이다. 나그네에게 자존심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다른 것은 다 무시를 당해도 자존심까지 뭉개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자존심은 목숨처럼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나섬은 몽골과 인도 이란 등 다양한 국가가 모이는 다민족 교회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그들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들 가운데는 피차 상처를 주지 않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안의 모든 이방인 나그네들에게 자존심은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전제다. 선교를 함에 있어 이런 나그네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자존심은 나그네 선교를 하는 나 같은 목회자에게도 동일하게 몸에 배어 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감당하기 힘든 자괴감으로 몸을 떨고 가슴에 큰 충격이 된다.
자존심에 대하여 민감한 내 모습은 나그네들에게서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강한 자존심을 보면서 사람이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것은 역사가 깊고 한때 제국의 경험을 갖고 살았던 사람들이 더욱 자존심이 강하다. 몽골과 이란 사람들이 그렇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대국에서 온 사람들은 정말 특별하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전쟁에 져본 적이 없다는 측면에서 매우 강한 민족이다.
나는 나그네들에게서 자존심의 가치를 배웠다.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은 돈과 관련된 것이다. 나는 돈에 길들여지는 것에 대하여 단호히 거부한다. 적어도 돈으로 나와 나섬의 사역을 함부로 매도하거나 그것으로 길들이려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용납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나는 돈으로 길들여지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나섬의 역파송 선교에 있어서도 큰 금액을 후원하겠다고 나선 교회와 단체가 있었지만 우리는 한 단체로부터 최대 오십만원 이상의 후원금을 받지 않고 있다. 행여나 돈으로 선교를 어지럽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개인 후원도 마찬가지다. 돈의 크기를 제한하고 사람에 의하여 주도되지 않도록 막고자함이다. 선교사들이 돈 때문에 본래의 의도와 순수했던 마음을 잃어버리고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와 개인이 더불어 동역하는 것이 가장 큰 힘이며 그런 선교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돈은 선교에 있어 가장 필요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독이 되기도 한다. 약이 되고 독이 되는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그것을 통제하느냐에 따라 그 사역의 미래가 결정된다. 나섬의 사역을 하면서 나는 그런 자존감을 나그네들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이곳에 왔지만 동시에 그 돈으로 자신의 삶이 함부로 취급당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기도 한다. 돈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