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잃었다. 그저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무척이나 자조적이며 절망적인 물음만 남는다. 앞으로 우리 교단은 물론이고 한국교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 당장 나와 우리 나섬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처구니없는 총회 재판국의 결정에 당황함을 넘어 절망하고 또 절망한다. 끝없이 추락하는 교회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떠날 것인가 아니면 침묵하며 묻어갈 것인가? 그러나 부역자로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힘들 것 같으니 갈 곳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떠나야겠다.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 교회의 현실에서 멀리 떠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들도 내 마음을 이해해 줄 것이라 믿으며 떠날 준비를 한다. 그래도 함께 할 동역자들이 없지는 않을 것 같아 위안은 된다. 외롭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떠나야 할 그곳은 광야임에 틀림없다. 돈과 권력에 무릎 꿇고 타협하며 사느니 차라리 광야가 낫다. 마지막 희망은 가을 총회뿐이다. 그래도 여지가 있을지는 얼마 남지 않은 총회뿐이다. 조용히 남은 시간을 세며 갈 곳을 바라본다.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여기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떠날 때가 오면 떠나련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밀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또 나그네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남는 자와 떠나는 자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누가 마지막 역사에 기록될지 어떻게 평가될지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나는 내 길이 있고 그 길을 선택함에 있어 조금도 주저함 없이 주체적인 결단을 하며 살아왔다. 내 길은 내가 정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고 거짓은 거짓이라 말하라고 배운 대로 산다. 그것이 누구이든 나는 내가 배운 성서와 예수가 가르쳐 주신 그 믿음과 교훈을 따라 산다. 지금은 결단할 때다. 눈치를 보거나 침묵하는 것은 곧 죄를 짓는 일과 다름 아니다. 부역한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침묵하며 뒤따라가는 자들도 그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듯 나도 내 선택에 책임을 질 것이다. 어차피 한번은 그런 길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아웃사이더 비주류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이제는 내 길을 가야 한다. 더 변방으로 중심이 아닌 버림받은 세상과 인간에게로 다가가는 것에 두려워말자. 다 헛된 것에 욕망하는 것을 조롱하면서 나는 예수가 탔던 작은 나귀새끼 같은 것에 마음을 싣기로 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 삶을 싣고 내 길을 가는 것이 그분이 가르쳐 주신 삶이라 믿으며 떠나야겠다. 나그네 목회하는 삶이었으니 나그네 되는 것은 당연했다. 노마드 유목민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역사와 교회가 그것을 요구한다. 살아있음은 떠나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