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기독교 극우 일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에스더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생산했다. 기독교가 가짜 뉴스의 본거지라고 하니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 특별히 나는 연세가 드신 분들로부터 많은 가짜 뉴스를 받았다. 때로는 말도 되지 않는 뉴스를 진짜인양 공유하며 여기저기 전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찌 교회가 이리 무너지고 말았나하는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닌 기독교인들이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회가 진리 편에 서지 못하고 침묵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나아가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본거지라는 것은 이미 교회가 심각한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예멘 난민들을 비롯한 무슬림 난민들을 왜곡하고 차별하려는 가짜 뉴스가 드디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알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그네 선교를 하고 있는 목회자로서 난민들을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왜곡하여 사회적 갈등은 물론이고 교회의 선교적 사명마저 망각한 가짜 뉴스 생산자들은 우리 사회와 교회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
가데스바네아의 열 두 정탐꾼들의 이야기를 다시 새겨본다. 모세가 가나안을 정탐하라고 보낸 자들은 각기 본대로 보고를 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자신들이 그들에 비하여 너무나 연약함으로 '우리는 메뚜기'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보고를 했다. 똑같은 현실을 바라보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을 메뚜기같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상대를 하찮은 밥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고백을 할 것인가? 세상과 인생은 그렇게 관점의 차이로 나누어진다.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결국 그렇게 갈라지고 나누어진다. 세상과 운명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이 내 삶을 바꾼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관점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며 왜곡된 정보로 공동체의 운명을 깨려는 악한 세력이다. 이제는 다시 바로 세워져야 한다. 더 이상 교회가 가짜 뉴스의 공장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기독교가 진리를 말하지 못할망정 가짜 뉴스나 만들어내는 허접한 문제집단이 되어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 진리와 정의 편에서 과연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살아 역사하시는지를 고백하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난민들을 왜곡하고 내쫒으려는 극우 편협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자산으로 만들어내는 힘 있는 교회 공동체의 참 모습을 회복하여야 한다. 선교적 교회로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안의 약자들을 돌보며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로 인식하려는 새로운 관점과 고백을 가진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로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고 몇몇의 정치적 이념에 종노릇하려는 자들을 경계하고 몰아내어야 한다. 더 이상 교회의 지체들이 그런 자들의 유혹과 미혹함에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피차 사랑의 줄로 이어지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