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님이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를 책망하신다. 이유는 주께서 자신이 십자가를 짊어지실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그 고난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만류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칭찬하신 주님께서 갑자기 자신을 사탄이라 꾸짖으실 때 베드로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기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는 주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여전히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칭찬과 책망이 같은 날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 잘하고 있다고 칭찬도 하시지만 동시에 잘못한 것들에 대해 책망하시는 주님을 묵상한다. 30년이 넘도록 나섬의 사역을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게으르고 진지하지 못한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내가 가로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베드로는 분명 주님이 가셔야 할 고난의 길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이 고난의 길을 가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의 답변만 본다면 베드로의 말은 매우 인간적이다. 그의 답변은 주님에 대한 제자의 인간적인 충성심의 발로다.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이 왜 고난을 받으셔야 하는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답변에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앞섰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욕망이 우선할 때가 있다. 선한 뜻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 하지만 때로 그것이 인간의 욕망이라 오해받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사이에 경계가 모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늙어가고 있다. 남은 삶만이라도 이제 그 욕망의 언저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한다. 베드로를 칭찬하셨지만 동시에 그를 책망하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사이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내 욕망과 영광의 자리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했다. 에베소 교회는 칭찬받기에 합당한 교회였다. 열심이 있었고 이단들에 대하여도 단호했으므로 칭찬 받을만한 교회였다. 뿐만아니라 초대 교회 중 바울이 특별히 사랑한 교회였다. 그러나 책망할 것이 있었으니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첫사랑은 끝까지 간직해야 할 소중한 기억이다. 그것을 잃어버린다면 가정도 파괴되고 교회도 무너진다.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는 칭찬보다 책망받은 교회로 기록되었다.
첫사랑을 생각하며 칭찬받는 삶을 묵상한다. 내가 좋아하는 바울처럼 나 또한 끝까지 일관된 마음으로 헌신하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