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님이 쓰시는 구원의 통로가 되는가?”라는 물음은 나그네 섬김 사역을 하는 내게 큰 깨달음을 주는 질문이다. 성서에는 구원의 통로가 된 사람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 그의 둘째 아들 야곱,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 여리고 성(城)의 기생 라합, 모압 여자이며 과부인 룻, 선지자들과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이 그들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작은 자가 곧 예수 자신이라며 작은 자들이 구원의 통로라고 말씀하신다. 작은 자가 예수라는 선포는 나섬의 모든 사역에 지금도 깊은 영적 깨달음을 준다.
창세기 12장에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가 모든 민족의 축복의 통로임을 알려주시는데 축복의 통로는 곧 구원의 통로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영적 조상이며 그로부터 구원의 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성서에서는 구원의 통로로 쓰임 받은 영적 계보를 마태복음 1장에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의 족보를 통하여 알려주시는데 그 족보의 특징 중 하나는 여인들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등 이 여인들의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 한마디로 이들 모두가 구원의 통로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이삭과 야곱과 요셉인데 그들은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들이었다. 주님의 구원에 대한 전략은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를 통한 구원이었다. 구원의 통로가 되는 사람들을 말씀 속에서 발견하며 나섬의 사역이 왜 나그네와 작은 자들에게 집중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사역이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성서 속에서 내 삶의 방향과 사역의 길을 찾는다. 오직 말씀만이 내 삶과 사역의 나침반이다. 나섬에서 만나고 선택받은 역(逆)파송 선교사들을 보면서 나는 주님의 말씀이 옳았음을 확신하였다. 구원의 통로로 이들을 쓰임 받게 하시려고 불러 모아 주신 것이다. 이들은 주님의 계획 속에서 오고 가고 만났다. 이는 주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만남이다. 이들은 구원역사를 이루시려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에게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곧 아브라함이며 리브가이고 라합이며 룻이다.
구원의 통로로 사는 것이 복되다. 당장 부름받은 당사자의 삶은 고단하고 힘겨운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구원의 통로로 쓰임 받고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축복인가! 나는 구원의 통로로 쓰임 받는 자들을 섬기고 그들을 주님의 계획에 따라 만나고 보내는 일을 하니 참 감사하고 복되다. 비록 힘든 인생을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삶은 후회 없는 삶이었다. 주님의 구원계획을 아는 것이 오늘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