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로서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감격스러운 것인지 설교를 하면 할수록 그 의미를 더 깊이 알게 된다. 설령 목회를 그만두고 싶어도 더 이상 설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실감 때문에 주저하기도 한다.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설교하고 산 지가 어언 37년이 지났다. 그동안 설교를 많이도 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내가 먼저 은혜를 받아야 설교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 주일 내내 말씀을 묵상하곤 한다.
군목 시절 설교하던 나는 언제나 외줄 타는 심정으로 설교를 했었다. 홍천 신병교육대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 당시는 군부독재 시절이었으므로 함부로 설교할 수 없던 시대였다. 군에서 병사들은 물론이고 장교로부터 직업군인의 가족들까지 모이는 그 시절에 나는 위험한 설교자로 주목(?)을 받았다. 군부시절에 군부독재는 안된다고 설교를 했으니! 그래도 나는 당당했으며 용감했다.
그래서였는지 내 주변에는 언제나 보안부대가 따라다녔고 그런 이유로 전역할 때까지 그들과 갈등했고 때로 매우 심각한 상황에 다다를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죽는 날까지 정의와 진리만을 설교하겠노라 다짐했다. 여느 교회와 달리 우리 교회는 분위기가 자유롭고 설교자의 설교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설교를 준비하면서 의식하게 되는 것들이 생겨났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 비판적인 이야기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설교란 말씀을 통하여 시대를 읽어가는 매우 중요한 신앙고백이다. 말씀은 반드시 시대 상황 속에서 다시 읽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시대를 언제나 말씀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설교하는 자가 설교자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은 설교가 아니라 교인들의 입 맛에 맞는 단물만을 전달하려 한다. 교인들은 영적 당뇨병에 걸렸고 더 이상 쓴 말씀은 듣지 않으려 한다. 더더욱 진영논리가 만연한 한국교회는 어느새 보수를 넘어 극우의 대표 집단이 되었고, 목회자는 설교를 통하여 세대를 책망하거나 잘못된 지도자들을 비판하지 못한다. 오히려 철저히 현실에 타협하고 교인들의 이념에 부합한 설교로 진영논리를 더 강화한다. 뿐만아니라 오늘날 가장 심각한 신사도 운동에 젖은 목사들은 영적인 말씀을 전달한다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생각이나 자기개발 논리를 설교로 둔갑시키고 있다. 점점 강단에서는 독사의 독으로 바뀐 말씀이 전파되고 있다.
이념의 눈치를 보는 설교자, 신사도 운동에 경도되어 교인들을 잘못된 기독교로 끌고 가는 설교자가 한국교회에 늘어난다. 내가 그런 설교자가 아닌지 돌아보면서 진정 설교의 회복을 절실히 느낀다. 설교자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자기 검열을 하지 않으며 진리와 정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교회는 다시 서게 될 것이다. 설교가 회복되어야 교회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