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으로는 바울의 선교를 통하여서다. 역사적 예수를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바울이 어떻게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며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았을까?
튀르키예에 올 때마다 나는 바울을 생각하고 바울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튀르키예 땅은 그리스도교의 출발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바울의 삶과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교는 세계화되었고 그 교회가 오늘날 우리 한국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우리의 원조는 바울이 맞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식하고 그를 통하여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학의 본질은 바울이 아니고서는 찾아낼 수 없는 가장 큰 요소다.
튀르키예에 오면 나는 언제나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고 바울에 대한 연구를 더 깊이 하고픈 마음이 든다. 바울 없이 그리스도교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신학의 질문이며 그 답변이 역사신학이고 그 중심이 된 곳이 튀르키예이다. 그동안 튀르키예의 여러 곳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 바로 이즈닉, 니케아 종교회의가 있던 곳이다. 에스키셰히르에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길목에 이즈닉이 있었다. 바로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있었던 곳이다. 중심도로에서 30여분을 돌아 찾아간 이즈닉 아야소피아성당은 오래된 건축물이지만 그 역사만큼이나 의미 있는 것들이 그 안에 남아 있었다. 물론 그곳은 지금 이슬람의 모스크로 바뀌었지만 어쩐 일인지 한 쪽에는 1700년 전 역사를 지키고 싶은 누군가의 고뇌가 남아 있었다. 돌계단으로 이어진 아야소피아 성당 안을 아내의 손을 잡고 들어가 보았다. 반원형 돌계단으로 되어있는 곳에 이르러 어쩌면 이곳이 삼위일체론을 논하던 곳일지도 모른다는 아내의 말에 나는 내가 그 성당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파가 삼위일체론을 놓고 격론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을 나는 아내와 함께 두루 다니며 오래된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한쪽 구석에 그 당시 침례의 흔적이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발견했다.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아내가 휴대폰으로 찍어 두었다. 다른 한쪽은 모스크의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조용히 그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기도를 했다. 니케아종교회의라는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회의가 열렸던 곳에 이슬람의 예배당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종교회의가 열렸던 그곳이 지금은 모스크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호잣트 부부와 성당 밖으로 나오니 마치 우리 파고다 공원 같은 느낌이 드는 곳에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앉아 이야기 하는 모습이 보였다. 성당 옆에는 빵집이 있어 갖구어낸 빵이 먹음직스럽게 김을 식히고 있었다. 그 옆집은 우리네 전기 통닭구이집이다. 그곳에서 빵과 통닭을 샀다. 콜라까지 샀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즈닉이 자랑하는 이즈닉호수로 갈 것이다.
이즈닉호수는 튀르키예에서 다섯 번째로 큰 호수다. 해발 80미터에 자리 잡은 이 호수는 정말 멋지고 깨끗하며 바다같이 넓은 호수였다. 몽골의 홉스굴이나 러시아 시베리아의 바이칼, 그리고 아르항가이에 있는 어기노르 호수 같은 큰 호수를 가보았으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간 이즈닉 호수는 정말 놀랍도록 깨끗하고 멋진 호수였다.
먼저 자리를 잡고 우리만의 피크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호잣트 차 안에 있는 낚시도구다. 호잣트는 원래 낚시마니아다. 그는 차안에 낚시도구를 갖고 다닐 정도로 낚시를 좋아한다. 이렇게 해서 나와 호잣트는 이즈닉 호수에서 그렇게나 바라던 낚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호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다. 아내와 배선교사는 아야 소피아 성당 앞에서 산 빵과 통닭으로 점심을 준비하고 호잣트는 빠르게 낚시도구를 폈다. 낚싯대 하나를 내게 주면서 큰 물고기를 잡자 한다. 그는 낚싯대 하나를 더 폈고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동네 개들이 모여들었다. 닭고기 냄새를 맡았나 보다. 개들도 한가하다. 호수는 너무 잔잔했다. 내가 들고 있던 낚싯대에서 반응이 왔다. 하지만 한 마리도 낚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떤 여행에서도 맛볼 수 없는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여행이다. 뜻밖의 우연과 예고하지 않는 만남, 준비되지 않은 일들로 이어진 여행 말이다. 누가 이곳에서 피크닉을 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즈닉에서 호수를 찾아 낚시할 상상을 했겠는가? 니케아도 삼위일체도 잊어버린 채 호수에서 하루를 보내는 내가 너무 웃겼다.
빵 안에 통닭을 찢어 넣어 만든 즉석 케밥은 그런대로 점심으로는 그만이었다. 튀르키예에서 먹어본 음식들 중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아내는 조용했다. 한발 한발 호수를 걷는 아내를 쫒아가 손을 잡고 싶었다. 어깨도 품어주며 더 사랑해야지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은 더 멋지다. 온통 가로수와 들판이 올리브 나무다. 올리브를 수확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즈닉 호수의 크기에 감탄했다. 튀르키예의 멋진 시골마을을 돌아 호수를 따라가는 그 길이 상상만으로도 멋지고 행복하다.
에스키셰히르에서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던 그곳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었을 우연한 여정이 이즈닉 호수를 만나 더 멋졌고 그 호수를 따라 펼쳐진 올리브 농장의 풍경은 한 장의그림 같았다.
언제 이렇게 멋진 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이건 하늘이 내게 준 선물이다. 고생했다고 이즈닉을 선물로 보여주신 것이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더 깊이 냄새를 맡고 마음에 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되었다. 감격스럽고 행복했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내 인생의 사진첩 안에 니케아와 이즈닉 호수와 올리브 마을을 새겨 놓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