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튀르키예에 온 이유는 페르시안 선교센터 입당예배를 위해서다. 호잣트 선교사 가정을 이스탄불로 역파송한 지 9년 만에 선교센터가 세워졌다. 왜 이스탄불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나는 그때마다 이스탄불이 이란 선교는 물론이고 무슬림선교의 거점이기 때문이라 답한다. 이란이 처해있는 상황과 전 지구적 관심사는 선교전략을 세우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의 가장 큰 위험국가로 낙인이 찍혔다. 그 후 40년이 넘도록 그들은 철저하게 봉쇄와 차별의 고통 속에서 살았다. 미국이 가르쳐 온대로 우리는 그들을 악의 축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은 저주받은 국가와 국민으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먹을 것이 없고 더 이상의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이 이란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 탈출의 통로가 튀르키예이며 이스탄불이었다. 이스탄불은 이란과의 관계와 역사 그리고 모든 가능성의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 선택지였다. 이란인들이 오고가는 길목이며 통로가 되는 이스탄불에 우리는 페르시안 선교센터를 마련했다. 그것은 기적이었고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의미있는 신앙적 사건이다. 나섬 페르시안 교회의 온 교인들은 그 현실을 함께 바라보며 기적을 체험하였다. 광야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처럼 만나와 메추라기를 받아먹는 사건이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눈에 보이는 길잡이였다. 페르시안 선교센터는 기도의 응답이고, 이제 다시 꿈꾸게 하시는 새로운 비전의 시작이다. 이제부터 주께서 하시려는 선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함께 믿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스탄불에서 한 주간을 지내며 이란인 교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선한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은혜를 받았다. 이곳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살아야할 미래와 비전, 선택과 집중. 그리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내 삶과 인생의 남은 것들에 대하여 깊이 묵상할 수 있었다.
용서할 것과 지켜야할 것들에 대하여 생각했고 인간에 대하여 끝까지 연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분노하거나 악해지지 않기로 했다 이기적인 삶을 더욱 경계하기로 했고 나에게 주어진 사역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더 깊이 생각하며 말하기로 했다. 짧게 말하기보다 더 깊이 생각하기로 했다.
남은 생애를 평화사역과 이슬람 선교사역에 집중하기로 했고 몽골학교를 정말 귀한 학교로 만들기 위하여 더 헌신하기로 했다.
아내와 대화하는 시간을 더 늘리기로 했고 이번 여행처럼 의미있는 선교여행을 더 많이 하기로 했다. 내려놓음이라는 말을 입으로만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해보기로 했고 이제 내 주변에 남은 사람들만으로 인간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새 사람을 만나기보다 남은 친구들만이라도 더 사랑하고 살기로 했다. 나이 값을 하기로 했고 철들고 사는 법에 대하여 더 고민하기로 했다.
이제 입당예배를 드리러 나가야 한다. 튀르키예 시간으로 오전 11시 한국시간으로는 오후 5시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기로 했다.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앞에 앉아 구걸하던 걸인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을 때에 그 걸인이 일어나 걸었다. 당장 몇 푼의 동전보다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은 그 걸인이 일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우리의 문제는 동전 몇 푼을 받고 못 받고 하는 비 본질이 아니라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것 즉 본질에 대한 것이다. 걸인이 된 것은 그가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고 그 걸인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동전 몇 푼이 아니라 오직 일어나 걷는 것임을 베드로와 요한은 알았던 것이리라.
걷게 하여야 한다. 일어나 걸을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걸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선교다. 나는 언제나 지속가능한 것에 관심을 갖고 사역을 해왔다. 그래서 자비량 선교를 해야 하고, '경제와 선교'라는 주제를 공부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지속가능한 선교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 도전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약 70여명의 이란인 성도들이 모여 입당예배를 드렸다. 설교에 앞서 세례식이 있었는데 다섯 명이 세례를 받았다.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무척 감격스럽고 은혜가 충만했다. 나는 예배에 들어가면서 성령의 임재를 간구했고 성령의 임재를 확신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초대교회를 마음에 그리면서 예배에 참석했다. 페르시안 선교센터가 초대교회의 모습을 재현하기를 바랐다. 내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 오늘 세례를 받은 다섯 명의 교인도 이란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세례를 받고 이란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감사하고 감격스러워 눈물이 난다. 내가 세례를 주면서도 내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이 흘렀다 닦을 수도 없을 만큼 철철 눈물이 났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도 나처럼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튀르키예에 와서 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거나 세례를 주는 날은 언제나 한 번도 예외 없이 몹시도 아파 고생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곳에 와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감기에 몸살까지 겹쳐 힘이 들고 아팠다. 정말 이상했다. 아내는 영적 전쟁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내가 이들에게 설교하고 세례 주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 했다. 어째든 이상하게도 튀르키예에 와서 설교를 하고 세례식을 거행하려 하면 그때마다 아프고 힘이 들어 괴로운 경험을 한다. 그래도 악한 영들에게 질 수는 없다. 오히려 몸이 아파도 포기하지 않고 설교를 하고 세례를 베풀면 어느새 힘이 생긴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오히려 더 은혜가 충만하다 한다. 앉은뱅이 걸인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해방되어 자유롭게 일어나 뛰었다는 말씀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힘이 나 더 힘 있게 설교를 했다. 여기저기에서 아멘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걸어야 한다.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이란인들이 일어나야 하고 이란이라는 국가가 더 이상의 저주와 절망 앞에 무릎 꿇지 말고 일어나 걸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은 오직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만 가능하다. 그것이 진리이며 복음이다. 구걸하지 말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복음이며 십자가 사건의 의미다. 하루살이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인생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예수가 가르치시는 진리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다시 기도시간이 이어진다. 나에게 기도를 받기 위하여 이란으로 돌아가려는 시간도 늦추었다며 H라는 형제가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 기도를 부탁하는 이들이 끝이 없다. 온갖 기도의 제목 앞에 나는 정말 말문이 막히고 오직 주님밖에는 소망이 없음을 바라보며 페르시안 선교센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깨달았다. 그들을 붙잡고 기도를 하는데 그냥 눈물만 나왔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먹먹해 기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이렇게 울고 있는 것인가?
시내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올랐다. 광야의 백성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이란에서 나온 이들이 광야의 백성이었다. 이들에게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필요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필요하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너무 가혹하게 보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그 장애물을 뚫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듯 이들에게도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지는 은혜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몹시 힘이 들었다. 홀로 서 있기도 힘들만큼 피곤했다. 그런데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의 글을 쓰고 싶다. 오늘이 아니면 이 느낌과 기분을 더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오늘은 너무 신비로운 날이다. 언제 이런 경험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성령의 바람이 분다. 이란인 성도들의 손과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면서 나는 오랜만에 성령을 체험했다. 정말 오랜만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