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심각한 양극화>
“이 시기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그것은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서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이방 사람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인 니골라를 뽑아서,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사도행전 6:1~6
빈익빈 부익부다. 교회가 그렇다. 가난한 교회는 계속해서 가난해지고, 부요한 교회는 계속해서 부요해진다. 부자 교회는 계속해서 부요함을 자랑하고 가난한 교회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슴만 쓸어내린다. 가난이 죄는 아닌데 어느새 죄가 되어버렸다.
교회의 양극화는 매우 심각하다. 이렇게 심각해지면 교회의 존속기반이 사라져버린다. 새신자는 줄어들고 수평이동에 의하여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상황에서 가장 밑바닥 근거가 되는 지역교회의 붕괴와 더불어 양극화는 교회의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준비된 대형교회와 특화된 소형교회만이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성장학 교수가 한국 교회에 대해 진단한 말이다. 정말 잘 준비된 대형교회와 특화된 소형교회만이 남게 된다면 중간지대의 지역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점점 지역교회의 목회가 어려워진다고들 아우성이다. 몇몇 대형교회의 성장세는 눈부시지만, 동시에 지역교회의 붕괴는 너무도 애처롭다. 붙잡아도 대형교회로 떠나가는 교인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참담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농어촌교회는 더 심각하다. 그곳에서 목회하는 내 후배 목사는 결국 도시로 나오고 말았다.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일 게다. 서울에서 보내주는 얼마간의 선교 목회비를 받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기에는 너무도 가여운 자신임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망이 보이지 않는 시골교회의 현실 앞에 그들은 절망하고, 그동안 사랑했고 소중히 여겼던 농촌목회의 의식과 자존심을 내려놓은 채 다시 세상의 경쟁지대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하나님이 안계실까 마는 정말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는 없다고 항변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왜 교회가 이렇게 나누어지고, 심각한 양극화로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우리 집 근처에는 대형약국과 대형 할인점이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대형교회도 있다. 모든 것이 대형화 되었다. 자본의 논리가 그대로 통용되는 현실이다. 모든 것이 돈 놓고 돈 먹는 세상이다. 누가 자본이 많은가에 따라 불공정 독점이 계속된다. 예전에 있었던 동네 약국이나 가게는 사라진지 오래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은 이제 약국도 가게도, 그리고 교회까지 대형화의 독점 속에서 할 말을 잃어버린다.
외국인근로자선교도 대형교회가 하려고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 재벌이 중소기업 아이템 빼다가 돈 벌고, 소형가게 죽여가면서 대형할인점 만들고... 그래서 중소기업이 없이는 결코 건강한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들은 척은 고사하고 아예 그 엄청난 자본으로 쓸어버리듯이, 교회도 내가하는 외국인근로자 선교나 목회까지도 그렇게 대형교회의 블랙홀로 흡수되어 가고 있다. 참으로 이것이 건강함이고 성숙함인지? 이런 목회와 교회의 마지막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하다.
자기 돈 갖고 자기 목회하고 교회 짓고 사람모아 하겠다는데 할 말은 없다. 그저 내 무능함에 몸을 떨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눈을 뜨고 보느니 차라리 눈감고 사는 내편이 낫겠다 싶다.
지금 교회는 몇몇 대형교회의 쟁탈전일 따름이다.
개척교회?
내 친구 목사는 신도시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설교준비하고, 심방하고 목회했다. 가난한 상가 2층 개척교회였지만 행복했다. 조금씩 늘어가는 교인들을 보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목회했다. 부족함이 많았어도 점점 나아지겠지 하는 소망으로 목회했다. 주변에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그 기대는 더욱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름만 대도 다 아는 우리나라 재벌교회가 그곳에 지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넓직한 땅에 큰 교회당이 들어서고, 넓은 주차장, 잘 훈련된 조교 목회자와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개척 용사 성도들까지... 이미 게임은 끝났다.
재벌교회가 들어서고 얼마 후 친구 목사의 교회는 문을 닫아야했다. 행복했던 목회지는 절망과 한숨의 목회지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한 번에 수십 명씩 그 개척교회의 교인들은 재벌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가면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편안한 의자와 쾌적한 환경, 놀라운 실력의 성가대와 음향시스템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재벌목사의 설교까지 모든 것이 충분했다. 그곳에 사랑과 믿음 그리고 인내와 관용은 없다. 자본과 사람 수로 눌러버리면 되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친구는 목회지를 옮겨야 했다. 다시 개척을 시작하는 친구에게 오늘도 재벌교회는 조금의 선교비를 보내준다. 이것 먹고 용서하라고... 아니 떨어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