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추석선물이라면서 소금을 보내왔다. 소금? 뜻밖의 선물에 의아하면서도 반갑다. 왜 소금을 선물로 보냈을까? 나도 앞으로 선물을 할 일이 있다면 소금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금 선물을 받고 느끼는 감정이 복잡하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되라 하시면서 부탁하신 것들이 있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소금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이리 난리법석인가 모르겠다. 총회와 교회가 난리가 난 모양새다. 세상이 또한 난리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님에도 세상은 전쟁과도 같은 소란스러움이 끝이 없다. 세상의 문제는 교회로부터 시작한다. 교회가 소금이 되었더라면 세상이 지금처럼 막무가내 식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세상이 혼란한 것은 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소금처럼 맛깔나게 하고 부패하지 않도록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했다면 세상이 이처럼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가 문제였다. 돌아보면 교회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우상숭배를 해도 괜찮다고 면죄부를 준 것도 교회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었다. 무속도 좋고, 무당도 좋고, 법사도 괜찮고, 무조건 나하고 같은 이념이라면 그가 이단이라도, 사이비라도 좋다는 식의 교회와 지도자들의 헛된 망상이 만든 결과가 오늘 우리의 현주소다.
예수라면 그렇게 하셨을까? 소금되라 했음에도 소금이 아니라 꿀 먹은 벙어리들처럼 세상과 타협한 교회가 소금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소금을 교회로 보내라. 소금을 우상숭배를 해도 된다며 면죄부로 사해 준 목사들에게 보내라.
두 번째 소금선물이 반가운 이유를 알았다. 일본 핵폐기물 방출로 더 이상 우리 바다를 믿을 수 없다는 우리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소금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일까? 정말 무섭고 화가 난다. 누가 소금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우리의 탐욕과 몰상식과 알량한 권력자들의 이해관계가 만든 것들이다. 이것도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교회가 권력의 편에서 그들을 지지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소금을 말할 자격을 잃었다. 소금이 되기는커녕 아예 소금을 무참히 사라지게 한 것이다.
소금선물을 받으니 미안하고 소금에게 정말 반갑다고 말해주고 싶다. 언제부터 소금이 이렇게 반가웠는지 참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다. 참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