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간혹 나보고 부흥집회를 해달라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부흥집회 인도는 매우 이례적이므로 생소하고 낯선 제안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다하지 않고 나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하긴 나 같은 목사를 누가 불러 부흥회를 해 달라 할 것인가? 이건 매우 특별한 것이니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간다. 아내도 그런 내가 보기 좋은지 휴가 가는 기분으로 집회를 하란다. 그렇게 나는 어설픈 부흥사가 되었다.
나는 가끔 그렇게 부흥사가 된 나를 생각하며 웃는다. 내가 부흥회를 한다? 정말 웃기고 놀랍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려 한 것은 다름 아닌 부흥회 자리에서 받은 은혜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청소년 여름수련회에서였다.
그곳이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중고등부 여름수련회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째든 그 수련회 기간 내내 삼일동안 비가 엄청나게 내렸고 우리는 천막 안에서 비를 쫄딱 맞으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했었다. 요즘 같으면 난리가 났을법한 상황이었지만 한사람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고 나는 그 수련회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 비가 내리는 숲 속에서 비를 맞으며 밤새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 날 부흥사 목사님이 참석한 청소년들 중 누가 나와서 간증을 하겠느냐 했을 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던 그 순간 내가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가 간증이라는 것을 했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후 나는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 되었다. 그 수련회와 부흥회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부흥회를 인도한다. 아웃사이더 비주류 목사인 내가, 부흥회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주민 목회를 하는 내게 부흥회 요청이 들어왔다. 세상이 바뀐 건지 내가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흥사가 되었다.
부흥회를 하려면 강단에서 펄쩍펄쩍 뛰고 큰소리로 주여 삼창을 하고 방언을 인도하며 교인들을 울리고 웃기는 재주가 있어야 할 텐데 내게 그런 은사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째든 나는 부흥회를 인도하러 간다. 이미 여러 곳에서 그런 집회를 했으니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완전히 이 길로 나가자 농담을 하면서 나는 아내와 기쁘게 부흥회를 하러 가련다. 하긴 부흥사가 어디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던가? 그리고 부흥사라고 다 똑같은 방법으로 부흥회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니 나 같은 목사도 못할 것은 없다.
올 여름에도 부흥회 일정이 잡혔다. 3박 4일의 부흥회 설교 본문과 제목을 보내고 준비를 하는데 마음이 좋다. 어째든 목사는 설교를 하는 사람이다.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보람이 있다. 잘 준비해서 은혜를 나누고 싶다. 어제는 그래서 잠을 못 잤다. 밤새 설교를 준비하느라 머리가 온통 설교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삶이 좋다. 설교하고 부흥회하고 선교하고 강의하는 내 삶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