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로마의 정치범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셨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예수를 죽인 사람은 다름아닌 유대인들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대인들 중 예루살렘 성전을 기득권으로 삼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정치가 아니라 종교가 예수를 죽인 것이다. 예수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성전주의에 대하여 거세게 비판하셨으며 그 일로 미움을 받으셨다. 그것이 예수 십자가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다.
성전주의자들의 욕망이 예수를 죽였다. 교회가 욕망에 사로잡히면 예수는 없다. 교회 안의 욕망이 예수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목사가 주인 노릇을 하고 교회 안에 큰 자산가와 강한 권력자가 얼마나 많은 지를 자랑하기 시작하면 그 교회는 이미 욕망하는 집단이 된다. 그곳에 인간은 있을지언정 예수는 없다. 예수는 그곳에서 떠나셨거나 버림받아 거리로 쫓겨나셨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 속에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십자가 사건이 실루엣처럼 오버랩 되고 있다. 교회가 권력이 되고 목사가 주인이 되어 교회를 사유화하고 있다. 때로는 성전이라는 미명하에 교인들을 미혹하고 복음과 하나님대신 온갖 세상의 술수가 난무하고 있다. 교회를 이념의 전쟁터로 몰아가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교인들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일부 교회지도자라 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미 교회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순진한 교인들을 정치적 이념의 노예로 만드는 일은 악이며 범죄다. 이런 자들을 슬그머니 뒤에서 이용하고 등을 떠밀며 잘한다고 앞세우는 이들은 마땅히 더 교묘한 악이다. 그런 자들의 교회에 예수가 계시다고 믿는다면 나는 그런 예수는 믿지 않겠다.
2000년 전에도 지금도 교회와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고 있다. 우리 자신이 그 범인임을 자각하고 회개하며 돌아서야 한다. 우리 스스로 예수를 죽인 자는 아닌지 물으며 예수의 정신과 삶을 회복하여야 한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제자들과 다시 만나셨다. 갈릴리는 예수의 사역지이며 삶의 자리였다. 그곳에서 예수의 삶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가 지향하는 곳은 바닥이었다. 저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 밑바닥의 작은 공동체였다. 예수는 병들고 신음하는 이들의 편이 되어주셨으며 이방인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서럽게 살던 이들의 친구로 사셨다. 사마리아 여자와 같이 버림받은 이들의 벗으로 사셨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냄새나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갈릴리에서 예수는 다시 제자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의도다. 교회가 더 높이 올라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늘로 올라가려는 교회가 아닌 땅으로 내려오는 교회여야 한다. 화려한 치장으로 분칠하지 말고 역사 속에서 살아계신 예수의 십자가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교회를 만나고 싶다. 거룩한 모습으로 포장한 근사한 설교가가 아닌 낮은 곳에서 부활의 예수를 삶으로 증거하는 목회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