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과 그의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총회장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도운 부역자들이 논란거리다. 총회장이 얼마나 좋길래 무조건 올라가려 했는지 잘 모르겠다. 뿐만아니라 그런 허물이 있었음에도 왜 그가 총회장이 된다고 할 때 말리지 않았는지 그를 도와주었던 이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논란이 커져 버렸다.
목사들이 노회장은 물론이고 총회장이라는 자리에 왜 그토록 목을 메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 자리를 한 번도 욕심내 본 적 없고, 그런 자리를 준다고 해도 그것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목사들의 명예욕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다.
올해로 목사가 된 지 어언 37년이 되었다. 1987년 2월 말, 나 한 사람의 안수식을 위하여 임시 노회가 열렸고 그날 나는 목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37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서울노회 목사로 남아있다. 아마 현재 노회 목사 중 최고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중도에 다른 노회에 잠깐 전입한 적도 있어 그런 주장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하나의 이력이 있다. 노회장은 물론이고 시찰장, 시찰 위원이라는 자리 한번 해보지 못한 무능한 목사라는 이력이다. 물론 시각장애인이 된 데다 평생 비주류 변방의 목회를 했으므로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고 사람들에게 각인 되었을 것이다. 평생 무시당하며 살았고 차별받는 목사로 살아왔으니 나도 나를 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무능하고 비루한 목사다.
그러나 나에게도 명예욕은 있을 것이고 그런 자리도 시켜준다면 왜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안된다고. 왜냐하면 나는 그런 공익적 자리를 맡을 만한 그릇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공적인 일보다 사적인 일에 더 관심이 많다. 나는 내가 하는 일 외에 공적인 일을 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자리를 한번 해보라고 말할 리도 없겠지만 내게 그런 자리를 맡으라 하면 나는 분명히 거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공적인 일을 맡을 만큼 교단이라는 조직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에 대한 공적 애정이 없는 사람이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리스크다. 그런 사람은 총회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나는 목사라는 자리마저도 두렵고 버거워하며 평생을 살았다. 목사로서의 삶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 동네 친구들 모임의 총무 자리도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디든 그런 자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 할만한 사람이 가야 하는 자리를 개인의 욕심으로 올라가려 하니 세상이 우리를 비웃는 것이리라.
문제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다. 언제나 우리의 욕망이 문제를 일으킨다. 큰 목사가 되고 싶어 난리다. 큰 목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교회에서 이제 조용히 물러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가 그런 목사로 남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