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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 567_저항하는 사람들과 교회

  1517년 종교개혁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개혁운동이다. 로마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톨릭에 대하여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 부른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저항하는 사람들이었다. 저항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항의 영성이 교회 안에 내포되어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반개혁적이고 비성서적인 모든 현실에 대하여 저항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다. 

한국교회가 저항의 영성을 행동으로 드러낸 것이 19193.1운동이었다.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며 일제에 대하여 저항하는 존재로서 교회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의 저항의 영성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신사참배를 거치며 저항의 힘을 거의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동시에 저항의 영성은 다른 곳으로 표출되었는데 당시 전 세계를 출렁이게 한 사회주의로의 귀결이다.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의 저항이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곧바로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따라 사회주의자로 혹은 그 영향권 안으로 빠르게 동화되어 갔다. 하지만 사회주의도 결국 인간의 완전한 해방과 구원을 이루지는 못한다. 저항하는 이들의 실험적 전향은 실패하고 만 것이다.

결국 교회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친일 논란과 신사참배 문제로 거센 갈등이 일어났고 그 결과 분열되었다. 그러던 중 친일적 교회 지도자들이 주류가 된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역사적 사실이다. 그 후 교회의 저항력은 빠르게 사그라들었고 권력자들을 비롯한 기득권의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속적 문제에 대한 저항은 물론이고 교회 내에서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왜곡된 교회 권력에 대하여도 교회는 저항력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 교회는 더 이상 저항하는 이들의 공동체가 아닌 순응하고 현실에 타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전락하였다. 교회의 저항력 상실은 교회 권력의 남용을 부추겼고 이로써 교회의 타락과 종말을 가속화하였다. 교회가 저항의 힘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 의미를 잃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몰락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교회가 살아있다면 저항의 힘이 드러나야 한다.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하며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벗어났다면 교회는 서슴없이 그가 누구든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절대권력이든 교회 권력이든 교회는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힘은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온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부터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했던 마틴루터 킹 목사가 그랬고, 한국교회의 3.1운동과 신사참배 거부 운동이 그랬다.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시절에 교회의 저항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고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리더로서 교회가 존재했었다.

저항하는 교회의 힘을 다시 보여줄 때가 되었다. 저항하는 교회의 영성을 회복함으로 다시 교회를 살려내야 한다. 권력과 물질에 줄을 대고 권력 앞에 굴복한 자 누구인가. 다시 꼿꼿하게 일어나야 한다. 굳세게 일어나 아니라 말하고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야 한다.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저항하지 못함으로 교회가 힘을 잃었다. 세상의 권력에 무릎 꿇는 교회는 가라! 진정 남은 자가 누구인지는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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