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 설악면에는 가락재 영성수련원이 있다. 그 수련원의 원장 목사님은 평생 그 수련원을 개척하고 만들어 오신 분이다. 한국교회의 출신배경으로 따지자면 그는 성골 출신이다. 한마디로 금수저 출신이다. 좋은 기독교 가문과 좋은 학벌까지 목사님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뿐 아니라 외국 유학을 하셨으니 어느 면에서 봐도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 수저의 배경을 가진 분이다. 목사님이 만들어 오신 영성공동체를 처음 방문한 것은 수년 전 장로회신학대학 신대원 학생들의 가을 신앙사경회 강사로 갔을 때다. 그 후 나는 목사님을 형님이라 불렀고 목사님은 나를 아우처럼 사랑해 주었다.
그 영성수련원을 방문하여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깊은 영적 통찰을 얻는다. 올해에도 그곳에서 신대원 신앙사경회가 있어 강사로 갔다가 목사님을 만났다. 70대 중반의 노인이 그곳에 계셨다. 홀로 그 넓은 수련원을 지키고 만들며 끌고 가느라 목사님은 많이 지쳐 보이셨다. 신앙사경회는 올해까지만이라며 내년부터는 다른 곳으로 가라 하신다. 학생들은 신앙사경회를 하기 위하여 계속 오겠다는데도 말이다. 이젠 목사님도 힘에 많이 부치신 모양이다. 혼자 일하고 청소하고 감당하기에 그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과연 나 같으면 이 일을 홀로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싶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아무도 없는 골짜기에서 외롭고 힘든 영성수련원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목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목사님도 내게 묻는다. 어떻게 그 어려운 나섬의 사역을 그리 오랫동안 감당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우리는 피차 서로를 이해했고 알아차렸다. 우리 둘은 그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동시적으로 말했다. “그래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영성이야!”라고 말이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이 있었다. 목사님에게도 내게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았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던 때도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되는 고통이었다. 때로는 온몸으로 때로는 영적으로 무너졌고 아팠다. 너무 아파 울었고 죽고 싶었다. 그 목사님도 그랬다 했다. 그래서였을까 목사님과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의 철학과 신학이 매우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누군가 무엇이 영성이냐고 물으면 그것은 포기하지 않는 힘이라고 대답한다.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일어나는 힘이 영성이다. 영성은 대단히 신비적인 그 어떤 것이 아니다. 너무도 인간적인 그러나 너무도 거룩한 힘이다. 인간적으로 나를 위로해 주며 안아주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그래서 포기 대신 인내를 갖게 하는 힘이다. 무너지고 싶을 만큼 아픈 나를 다시 회복하게 하는 거룩한 힘이 영성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 위로해 주셨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셨다. 그 힘으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다. 오늘도 힘들고 아프고 괴롭다. 그러나 또다시 영성의 의미를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는 힘 주심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