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종파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소외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세상과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자신의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이단에 속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보고가 있다. 외롭고 마음 상하고 열등감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어 할 때 이단들은 귀신같이 그 틈새를 파고든다. 그 순간 소외와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이단의 유혹은 놀랍고도 신비로운 힘으로 다가온다. 한번 이단의 유혹에 빠져들면 소외와 열등감의 고통이 사라지고 오히려 핍박받는 자신이 정의롭게 느껴지고 진리 가운데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한다. 어떤 박해와 고난도 이길 수 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특히 열등감은 매우 상대적인 것으로 보통 사람들이 볼 때 결코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이들도 열등감에 빠진다. 특히 자본주의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도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단과 사이비는 나약한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병리 현상, 일등만이 살아남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독버섯같이 번져나간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엄청난 이단과 사이비가 판치고 있다. 이단이라고 이미 신학적, 교리적으로 판단된 집단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이비가 생겨나고 있다.
특히 신사도와 같은 집단은 분명 이단이며 사이비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분별하지 못하고 마치 기독교 종파 중 하나인 양 안일한 인식에 사로잡혀 그들을 용인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신사도는 가장 무서운 사이비다. 그들은 분명 교회와 기독교를 사이비로 끌고 가며 교회의 건강성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이비는 교회와 성도들을 정치 집단화시키는 것이다. 교회는 정치적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 교회가 왜 우파이어야 하고 혹은 이념적 진영논리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교회와 정당은 다르다. 교회는 정치적 지향성을 같이 하는 이들의 정당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다. 그런데 우리 중 어떤 집단은 이미 교회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교회를 빙자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태극기를 흔들고 때로 성조기를 흔들며 황당하게도 이스라엘 국기까지 동원하여 우파 만세를 외친다. 이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들은 사이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겁하게 그들을 그대로 방치한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따져가며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고 있다. 비겁하고 무기력한 교회의 현실이다. 불행하다. 소외와 열등감으로 고통당하는, 그래서 사이비에 속고 살아가는 이들이 속히 이단과 사이비로부터 구출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