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이라 불리는 탈북민과 만났다. 얼마 전 ‘남북한주민 통일문화여행’에서 처음 만난 김 선생은 매우 특별한 분이었다. 남과 북 모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그는 칠십이 지난 나이지만 매우 강단 있어 보였다. 나와 대화를 하면서 젊은 시절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지금도 한두 명 정도는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노라 하였다. 자신의 의도와 별개로 탈북을 한 김 선생은 아직도 북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을 보고 싶어 했다. 그는 북에서 당 간부로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인문학적 소양과 감성은 놀라울 만큼 비범했다. 아직도 시를 읊는 솜씨가 대단해 그와 대화하는 중 그의 시적 감성에 몇 번을 탄복하였다. 통일문화여행 후 내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하였고 그는 정확하게 아니 그보다 이른 시간에 몽골학교에 찾아왔다. 매사에 정확한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대단한 언변을 갖고 있었으며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며 살고 계시느냐 물으니 이런저런 자신의 한국 생활을 이야기한다. 때론 가슴이 아팠고 탈북민의 삶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현재 한 달에 70만 원 정도의 기초 수급자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것으로 어떻게 사시냐고 물으니 그런대로 살 수 있다며 오히려 조금씩 저축도 가능하다 한다. 그렇게 모은 돈 9,500만 원을 수십 차례에 걸쳐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기도 했단다.
탈북민의 삶은 생각보다 힘들고 고단했다. 젊은 남자 청년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지지 않으니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경우가 늘어나고 젊은 여성들은 점점 지하로 들어가고 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는 사람도, 자본도, 아무런 근거도, 배경도 없는 탈북민이 대한민국이라는 첨예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많은 탈북민이 그렇게 살고 있다. 가장 밑바닥의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생활마저도 위협받을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김 선생도 마찬가지다. 비록 탁월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능력을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고, 알아준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불행하지는 않다며 힘은 들지만 최선을 다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참 귀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내가 어떻게 탈북민을 도와야 할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생긴다. 김 선생과 같은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섬의 사역은 이런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섬의 사역은 고단한 이들과 절망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역이다. 최소한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경제적 문제는 모든 절망의 근거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사기를 치지 않고 몸을 팔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돈을 주고 교회에 나오라 하지 말고 근본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자립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김 선생과 같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김 선생이 탈북민의 모델이 되어 많은 탈북민이 김 선생의 길을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오래전 계획이 떠올랐다. 계륵이 된 한국교회 기도원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할 때가 되었나 보다. 힘이 들지만 그들이 살 수 있는 근거는 그래도 교회다. 교회가 힘을 모으면 탈북민 3만 5천 명은 살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나서야 한다. 탈북민과 이주민 나그네가 살 수 있는 세상은 오직 교회만이 만들 수 있다. 예수라면 지금 무엇을 하실까를 고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