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는 아마르 자르갈이라는 선생님이 있다. 우리 학교에서 무척 모범적인 교사 중 한 명이다. 그녀에게는 두 자녀가 있는데 큰딸이 노밍, 작은아들이 후슬렝이다. 후슬렝은 자폐를 가진 장애아인데 자르갈 선생은 자폐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에도 언제나 감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하다. 자르갈 선생은 오래전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와서 살았는데 불행하게도 남편이 한국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자르갈 선생은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았고 딸 노밍은 엄마의 고생을 지켜보며 살았다.
노밍은 한국에 살면서 한국말을 잘 배웠고 그 후 몽골에 돌아가 여행가이드를 하였다. 얼마 전부터는 우리 학교 졸업생인 남편과 함께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직접 여행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여행사를 운영하며 가이드로 일하는 등 열심히 살고 있다. 올여름에도 몽골에 가서 노밍을 만나며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해에는 내가 몽골을 세 번이나 방문했는데 노밍이 앞장서서 우리 일행의 일정을 도와주었다.
그러던 노밍이 오늘 한국에 방문하여 나를 찾아왔다. 물론 엄마가 근무하는 학교이고 남편의 출신학교이며 동생 후슬렝이 머무는 공동체이니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노밍의 방문이 고맙다.
노밍과 대화하던 중 올해에 얼마나 많은 한국 여행객을 받았는지 물으니 약 만 명이라 한다. 만 명이라니!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올해에 약 20만 명 정도가 몽골을 방문했다 한다. 그러면 그중 1/20 정도가 노밍의 손님이었다는 얘기다. 정말 놀라운 비즈니스가 아닌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노밍의 비즈니스는 강력했다. 그만큼 몽골에서 그녀의 영향력도 커지게 될 것이다. 한·몽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시작하며 내년에는 좀 더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포럼을 준비하자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문득 노밍이 그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몽 비즈니스 포럼을 준비하면서 내가 생각한 이는 바로 노밍 같은 청년이다. 그들을 성공시키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포석인 것이다.
자르갈 선생의 딸 노밍을 만나면서 다시 한번 몽골에서의 평화경제공동체 설립을 위한 한·몽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의미를 생각했다. 노밍같은 이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 많이 있다. 그들을 동원하고 결집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노밍을 몽골 여행의 대모로 만들어야 하겠다. 그래서 노밍 같은 청년들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 그것이 우리의 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