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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634_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 말고 네가 직접 답하라. 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는 질문이다. 주님은 시중의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고백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신다.

비가 내린다. 봄비가 적지 않게 내리는 지금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나에게 예수는 누구신가? 목사로 산 지 어언 38년이 되었고 매 주일 설교를 했다. 교인들에게 예수를 설명하고 예수를 잘 알도록 설교를 하지만 내게 그 질문은 언제나 생소하고 무거운 것이다. 예수는 과연 나에게 누구이신가? 나에게 예수는 누구신가라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왜일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답했던 베드로의 고백은 진정성이 있었던가? 예수의 최후를 경험하면서 베드로의 고백은 진정성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도망치고 예수를 부인하던 그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베드로 같은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마치 내 고백인 것처럼 예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있었다. 꾸며낸 고백은 고백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을 숨겨놓고 살아가는 나의 위선적 모습이 빗소리에 아른거린다. 회칠한 무덤 같은 바리새인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 현실의 삶은 자꾸만 정반대로 가고 있다. 나는 주를 누구라 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교인들에게는 우상숭배를 거절하라고 가르치면서 우리 교회는 우상숭배의 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주술과 미혹의 영들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주술로 만들어진 권력을 따라다녔다. 그런데 주술의 힘으로 만들어진 권력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교회는 말이 없다. 예수인가 아니면 주술인가? 누가 진리이며 정의인가를 답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답할 차례다. 예수의 진리와 정의가 아닌 주술과 우상의 힘에 편들었던 교회와 목회자들은 어디로 숨었는가? 참으로 기괴하다. 예수께서 묻는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내게 답하라. 과연 너희는 나를 믿느냐? 믿는 자들이 왜 이렇게 나를 멸시하느냐? 왜 거짓과 위선의 탈을 쓰고 설교를 하느냐? 우리의 고백을 듣고 싶다는 주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십자가 위에서 멀리 도망치는 베드로를 바라보시며 저가 나를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답하던 자인가 물으신다.

 

베드로는 미래를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좋은 날만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그렇게 답했을 것이다. 후일 그의 답변이 얼마나 위선적이었는가를 깨닫고 그는 교회 위에 그날 새벽 울었던 닭의 모습을 달아 놓았다. 위선의 상징이다. 진리를 따르지 않고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도망치던 그날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그 새벽 울던 닭은 지붕의 꼭대기 달려있어야 했다.

오늘 한국교회의 지붕에는 여전히 십자가만 달려있다. 그 십자가에 예수는 없다. 차라리 위선의 날을 기억하려는 베드로의 회개도 없다. 우리는 죽어야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사라진 교회는 무덤이 되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주술과 우상의 편에 서야 했을까? 고작 26개월짜리 권력이었는데 그 권력이 꽤나 오래 갈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참으로 우습다. 주께서 베드로처럼 어디론가 도망치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십자가 위에서 바라보신다. 입으로만 우상숭배 하지 말라고 설교하던 이들이 침묵하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참으로 안타깝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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