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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646_베트남과 이란, 전쟁과 선교

나는 투하 선교사가 있는 베트남 다낭을 방문할 때마다 일행과 함께 하미마을에 간다. 하미마을은 다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과거 베트남 전쟁 중 우리 국군들에 의하여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곳이다. 당시 하미마을에서 학살된 양민은 135명이었고 베트남 전쟁 중 우리 국군에 의하여 학살된 민간인은 9,000명 정도라 한다. 내가 우리 국군의 입장과 상황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이제라도 베트남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하여 우리는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는 선교를 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도 하미마을을 방문했었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위령탑이 세워져 있는 곳까지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우리 일행 중 몇몇 분은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곳까지 가는 것에 대해 불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기에 하미마을을 찾아가는 일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위령탑 앞에서 우연히도 한국에서 찾아온 어느 여교사와 고등학교 학생 몇 명을 만났다. 그들은 내게 매우 큰 감동을 주었다. 젊은 교사의 눈빛과 말투는 매우 진지하게 느껴졌다. 베트남 국민에게 사과와 용서의 마음을 갖고 있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날 비가 멈추지 않고 내렸는데 하미마을을 방문하고 버스에 올라 나는 왜 우리가 하미마을을 방문하여야 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거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그 전쟁에 참여했으며 전쟁 중 무수한 양민들이 우리 군인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사과하여야 한다는 것을 설명했다. 과연 우리에 의해 희생을 당하고 고통을 당한 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나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베트남 국민에게 우리는 복음을 전하려 하지만 우리에 의하여 고통을 받은 그들은 과연 우리를 신뢰하고 우리의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베트남 선교는 매우 힘들고 어렵다. 복음이 베트남에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들의 반응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복음은 어떤 것으로 느껴질까? 미국과의 베트남 전쟁은 엄청난 희생을 가져다주었다. 그럼에도 베트남은 미국을 이긴 나라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그들은 우리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가 과거 일제에 당했던 고통과 희생에 대하여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들은 승자였으므로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과 희생만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잘못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그것은 마음으로다.

미국은 곧 기독교라는 등식이 있는 상태에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복음은 무엇인가? 자신들을 죽이고 고통을 가져다준 이들이 전하는 그 복음은 과연 그들에게 용인될 수 있을까? 나는 그날 버스 안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베트남 선교를 하려 한다면 먼저 하미마을에서 우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고통당한 이들에 대해 사과하고 그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그리고 투하 선교사에게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라고 마이크를 건네었다. 투하는 우리가 파송한 베트남의 역파송 선교사다. 나는 투하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안다. 그녀는 매우 열정적이며 스마트하다. 투하는 내가 전해준 마이크를 받더니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창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고 모두가 창밖의 비를 바라보며 무언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투하는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투하가 한마디를 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모두가 그 순간 울었다. 나도 일행도 투하도 우리는 모두 창밖을 바라보며 울었다. 미안하다고 내 입가에서 말하고 있었다.

 

며칠 전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했다. 그리고 곧바로 미국이 이란을 폭격했다. T국의 호잣트에게 전화를 했다. 호잣트와의 대화에서 어떤 아픔이 느껴졌다. 그것은 분노였을 것이다. 나와 통화를 하는 중에도 호잣트의 전화기에서 계속 벨이 울렸다. 이란 난민들이 계속 그에게 연락을 한다고 한다. 이란인들이 말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에 이 전쟁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그에게 묻는다고 한다. 호잣트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내게 물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기도를 부탁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란인들에게도 다시 사과하여야 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말하고 복음의 대표적인 나라 미국, 아니 미국으로 상징되는 복음을 전하려면 우리는 다시 이란인들이 당한 고통에 대하여 사과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쟁광이 아니라 평화의 주인이시라고 수정해서 말해 주어야 한다. 예수는 평화의 왕이라고, 이런 전쟁은 그분의 뜻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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