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으로 살았는가를 생각한다. 오늘의 나섬과 몽골학교, 그 외 모든 사역을 해오는 동안 계속되는 고난이 있었다. 고난을 통하여 나섬과 몽골학교가 성장했고 그 고난은 마치 대나무의 마디처럼 굵고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디 마디에는 나의 고난과 아픔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이주민 사역을 하는 가운데 많은 고난을 받았다. 처음은 구로동에서 받은 충격이었는데 그때의 충격으로 눈에 심각한 질병이 시작되었고 그 후 결국 시력을 잃었다. 그런데 그 고난이 오히려 지금의 나섬과 몽골학교를 이루는 데 결정적 지렛대가 되었다. 그 고난으로 나는 진정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경험했다.
두 번째 고난은 2011년 7월, 엄청난 폭우로 몽골학교 건물이 물에 잠기는 수해를 입은 것이다. 지하 강당이 물에 잠겨 피아노를 비롯한 기자재들이 물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망연자실하였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모를 만큼 나는 당황했고 고통스러웠고 막막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오히려 지금의 나섬과 몽골학교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 만난 사람이 조 집사라는 분이다. 집사님은 우연히 운전 중 라디오를 듣다가 나섬과 몽골학교가 홍수 피해를 당한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오셨다. 그 후 그 만남이 가져다준 놀라운 일들은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은혜였다. 지금의 나섬과 몽골학교는 조 집사님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몽골학교 수해로 만난 뜻하지 않게 만난 이가 김 집사님인데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나섬의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고 우리 교회에서 가장 열심히 전도하는 전도왕이 되었다.
나비효과라는 개념은 여러 학설이 있지만 그중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라는 사람이 널리 알려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론은 작은 기상의 변화가 후에 큰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비효과는 작은 것 하나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작은 바람이 거대한 태풍을 몰고 오듯 나섬은 나비효과를 온몸으로 체험한 공동체다.
세 번째 고난은 바로 지금 시작되었다. 암이라는 바람이다. 처음부터 작지 않다. 처음부터 나를 기죽이고 지리게 한다. 두렵고 무서운 놈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바람이 될지 아직 모르겠다. 모든것을 날려 버릴지 아니면 나를 위대한 어부로 만들어 줄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것도 분명 내 삶과 우리 사역 가운데 반드시 어떤 나비효과를 이루어 낼 것임을 확신한다.
시편 119편에서 시편 기자는 고난은 유익이라 했고,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다. 그러므로 고난의 결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나와 우리 모두를 살릴 것이다. 더 강한 마디가 맺어지기를 바라며 고난과 마주한다. 아무도 내가 마주한 이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직 나만이 내 삶의 상황을 고백하고 바라볼 뿐이다. 인생은 어차피 ‘독고다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시력을 잃었으므로 나는 몽골학교와 나섬의 사역을 감당해 왔다. 홍수가 났음으로 몽골학교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암 환자가 되었으므로 더 높이 치솟는 대나무처럼 올라갈 것이라 믿는다. 고난은 나비효과를 만든다. 나는 고난의 나비효과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