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에 무엇을 하며 보낼까?’ 하다 문득 한반도에 들어온 하나님의 구원사(史)를 찾아가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하나님의 구원사(史)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추석 연휴 중 가족과 함께 강화도 마니산을 찾았다. 비가 계속 내렸으므로 마니산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나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을 찾아가고 싶었다. 그곳에 무엇인지 모를 그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다. 단군은 신화일까 아니면 우리나라에 들어온 하나님의 구원사(史)적 인물일까?
한국교회는 단군을 신화라며, 우상숭배라 규정하고 타파해야 한다고 고집해 왔다. 그러나 만약 단군이 야곱같은 존재였다면... 창세기 28장에는 야곱이 장막에서 광야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돌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으며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했다 한다. 또 하나의 벧엘이 한반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기독교 선교는 1885년 시작되어 올해로 140주년을 맞이하였다. 카톨릭까지 포함하면 이승훈이 중국에서 영세를 받은 1784년을 기점으로 올해로 선교 241년째다. 하지만 그 정도로 우리의 선교 역사를 제한할 것인가? 동방기독교를 포함하여 그 이전의 노아의 후손 욕단과 단 지파의 한반도 이동설까지를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에는 훨씬 오래전 하나님의 구원사(史)가 시작되었다.
추석 연휴 기간 중 성서와 고고학자, 각각 개인들이 주장하는 증거들을 정리하여 보았다. 이를 대략 네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욕단에 관한 내용이다. 창세기 10장 30절에 샘의 후손 중 욕단은 매사에서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지에 거주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욕단의 후손들이 거주했다는 동쪽 산지는 어디일까? 바로 오늘날의 한반도라는 가설이다.
두 번째의 가설은 북 왕국 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북쪽 산지에 있던 지파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데 그 지파 중 가장 북쪽에 있던 단 지파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한반도에까지 왔다는 주장이다.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 오직 단 지파만 나오지 않는다. 단 지파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일부 주장에 의하면 그 단 지파가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의 가설은 초대교회 사도 중 도마가 한반도에 왔다는 주장이다. 사도 도마는 선교를 위하여 동쪽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는 인도의 남쪽 첸나이에서 선교를 하였고, 더 동쪽으로 떠났는데 그곳이 한반도라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에 오면서 당시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또는 허황후)을 데리고 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과 결혼을 시켰다고 한다. 도마 선교의 흔적은 김수로왕릉에도 남아있는데 바로 수로왕릉의 쌍어문(雙魚紋)이다. 납릉정문에 두 마리의 물고기가 새겨진 문양은 초대교회 기독교인의 상징이 물고기였다는 점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특히 경북 영주의 왕유리에서 도마 석상이라 불리는 석상이 발견된 것 또한 선교의 흔적이라는 가설은 매우 흥미롭다.
네 번째의 가설은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복음이 A.D 7세기에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이라는 동방기독교에 대한 것이다. 네스토리안 기독교라 불리는 동방기독교는 620년경 시리아에서 당나라로 들어왔는데 시리아의 동방기독교 선교사 알루펜이 당나라에 전파했다고 한다. 당나라 장안에는 그 당시 동방기독교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것이 '대진경교유행중국비'라는 것이다. 당시 당나라와 신라는 매우 밀접한 교류를 맺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신라의 고도 경주에도 동방기독교가 들어왔을 것이다. 그 흔적이 불국사 석가탑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마리아상과 돌 십자가, 철제 십자문장식 등이다. 동방기독교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경주뿐만이 아니라 개성과 평양 그리고 만주의 발해 성터가 있는 훈춘에서도 다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동방기독교가 한반도, 우리 역사 속에 깊이 찾아왔다는 주장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가 이미 한반도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가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증거를 찾아가는 여정은 매우 흥미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는 미토콘드리아 DNA 추출을 통한 민족의 이동과 융합의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사를 찾아내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고인골에서 찾아낸 DNA 결과는 한반도에 다수의 백인종이 살았다는 주장이 있다. 백인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함께 살았으며 우리의 유전자에 백인의 흔적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백인들이 바로 코카서스 지역 혹은 이스라엘에서 왔다면 첫째와 두 번째 가설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사적 문헌과 고고학적 발굴이다. 고고학은 역사의 언어다. 고고학은 우리 역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가르쳐 주는 흔적이다. 경주에서, 개성과 평양과 훈춘과 내몽골에서 찾아낸 동방기독교의 흔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다양한 역사적 자료와 문헌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방의 역사 속에서 많은 자료와 증거가 있음에도 한국교회는 그것을 읽어낼 능력과 관심이 현저히 부족했다. 이제라도 그런 자료와 문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섭리와 계획을 찾아내고 의미를 계승하여야 한다. 그래서 내 남은 삶의 관심도 그런 것 중 하나다. 한반도에는 분명히 오래전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믿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