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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 669_다시 일어나 걷기로 했다

오늘 처음으로 의사와 면담을 하고 암 치료 방법을 결정했다. 수술보다는 방사선과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권고에 응하기로 했다. 수술도 할 수 있으나 나의 경우 눈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수술로 인한 부작용으로 요실금이 있을 수 있다면서, 수술 후 삶의 질이 떨어지고 그것으로 더욱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의사의 권고는 내게 큰 신뢰를 주었다. 의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의사를 만나기 위하여 진료실에 들어갈 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모습을 생각했었다. 정말 처참하고 긴장이 되었다. 마음은 졸아들었고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냥 의사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이 너무 괴로웠다.

30회 정도의 방사선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자는 의사의 소견은 절대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면서 여기서 내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온 것을 느끼며 한없이 약한 존재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죽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이들과 조금 더 머물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없는 생각이 내게 위안을 주기도 하고 괴롭게도 한다. 나는 마치 게임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더 살아야 함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싶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니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다. 하지만 그 선하심이 나에게는 이토록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다가와야 하는가를 물으며 설교를 준비했다. 과연 하나님은 선하시며 내게 고난이 진정 유익이란 말인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선하시다면 이 고통은 과정일 뿐인가? 아니면 결과도 고통인가?

 

영국으로 여행을 간 큰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보고 싶다. 아이들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고 나는 내 골방의 벽면에 눈물을 찍어 말린다. 스텝들과 나를 아는 이들로부터 위로의 메시지가 여기저기서 들어온다. 이들은 내 고통을 얼마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착한 암이라며 걱정 말라 하고 어떤 이는 그 암은 축복이라고도 했다.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디 있으며 축복된 암이 어디 있는가? 당사자가 되어보고 죽음의 문턱에 서봐야 비로소 내가 보이고 하나님이 보이는가 보다. 나도 전에는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내가 암 환자가 되어보니 그것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되고 묵묵히 기도를 해주는 것이 환자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나도 이제 암 환자를 만나면 위로랍시고 말을 많이 할 것이 아니라 묵묵히 기도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눈물을 닦고 웃기로 했다. 웃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다시 일어나고 싶다. 일어나 걷고 싶다. 앞으로 가고 싶다. 갈 길이 멀다. 잠시 쉬어 갈 수는 있지만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열심히 방사선 치료도 받고 호르몬 주사도 맞으려 한다. 약도 먹고 식사도 잘하려 한다. 운동도 하고 더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던 사람들처럼 나도 더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하련다. 마지막 무릎이 꺾일 때가 오더라도 오늘 나는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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