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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 676_어느 날 오후의 단상

1990년 군목을 전역하고 나 홀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때 가장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때 여행 자유화가 시작되었으므로 당시에는 배낭여행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였다. 당연히 그런 여행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달간의 여행 중 한국 사람을 만난 것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단 한 번이었다. 나보다 서너 살 어린 친구였는데 그도 군을 전역하고 왔다고 했다. 사병으로 전역한 그는 장교로 전역한 나를 형님이라 불렀다. 매우 사교적이며 도전적인 친구였다. 군대를 전역하고 바로 여행을 왔으니 아직도 군기가 잡혀 있어 자연스레 내 말을 잘 듣고 매우 가까워졌다. 너무 외로웠고 한국 사람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으므로 그를 만난 순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와 하룻밤을 같은 숙소에서 지내면서 밤이 늦도록 여행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며 너무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헤어졌다. 나는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으로 올라갔고 그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여행 중 가장 힘든 것이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힘든 여행을 더 힘들게 한다.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면 너무도 반갑다. 짧은 만남이지만 계속 그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기에 여행 중 사람이 그리운 것이 가장 힘들었다. 배낭여행 중 기차 안에서 만났던 프랑스 자매, 프랑스 파리 세느강변의 노틀담 성당에서 만난 독일 자매도 생각난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사기꾼 등 한 달 동안의 여행에서 만난 사람은 극히 적은 숫자다. 그것도 겨우 기억을 더듬어야 할 정도이니 나는 참 외로운 여행을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럼에도 그와는 왜 그리 짧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더 멀리 함께 가자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행자가 무슨 볼일이 그리 많다고 하루만 동행하고 헤어진 걸까?

 

암에 걸리고 사무실에 홀로 앉아 그동안 만난 이들을 생각했다. 고등학교 친구들부터 장신대와 군목 시절에 만난 사람들, 이주민 사역을 하며 동역하던 이들,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까지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들과 동행했으므로 외롭지 않았고 행복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역시 인생은 홀로 가는 여행이 맞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끝까지 함께 갈 수는 없다. 함께 가고 싶어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 있고 가야 할 방향이 다르다. 그러니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암에 걸리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 죽음이었다. 죽음이 눈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듯했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언젠가 내게도 올 것이라는 사실만은 인정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생각하지 못했다.

 

19874, 경상북도 영천의 3사관학교에서 군목 훈련을 받기 위하여 아침 일찍 정문에 도착하였다. 많은 이들이 군에 들어가는 이를 위하여 북적거렸고 나처럼 머리를 깎은 친구들이 여럿 보였다. 마침내 정문이 열리고 어떤 장교인지 훈육관인지 높은 대에 올라가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름이 불리는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졌다. 드디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군거리던 사람들 모두 조용해졌다. 처음 이름이 불리는 이가 누군지 정말 재수 없는 친구라 생각하며 맨 뒤에서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었다. 내 이름이 불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맨 처음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1번 훈육생이 되었다. 훈련 내내 나는 1번의 이름값을 톡톡히 치러야 했다.

 

상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며 당황했던 그날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가장 앞줄에 서서 손을 높이 들고 발을 맞추며 소리를 지르고 앞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훈련소까지 나와 동행했던 동생과 너무 갑작스럽게 헤어졌다. 동생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고 잘 지내라는 인사도 하지 못한 나는 맨 앞줄로 불려 나와 훈련소로 들어가야 했다.

 

남은 삶을 생각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그날은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잘 살아야 한다. 시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떠올리며 기도를 해주어야 한다. 그날은 도적같이 올 것이 분명하니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도 소중하다. 암이라는 병에 걸려 죽음을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들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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