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꼬리에 불을 붙여라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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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고양이 꼬리에 불을 붙여라


- 여호수아와 칭키스칸을 보니 우리도 할 수 있다


1206년 칭키스칸이 몽골제국을 통일한 이후 칭키스칸은 금나라의 중원제국을 점령하기에 앞서 서하를 공격하기로 했다. 1207년 칭키스칸은 서하의 변경 마을들을 점령한 후 처음으로 성곽을 마주하게 되었다. 몽골군이 처음으로 마주한 성벽이다.    
지금까지 해온 전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답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길을 막아선 성곽은 거인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들의 길을 막고 있다. 모두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그때에 칭키스칸의 머리에 기발한 전략이 떠올랐다. 그는 고양이 천마리와 제비 천마리를  조공으로 바치면 철군하겠노라고 서하의 왕에게 통고했다. 서하의 왕에게는 뜻밖의 반가운 제의였다. 고양이 천마리와 제비 천마리 정도는 얼마든지 조공으로 바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둘러 고양이와 제비를 잡아 칭키스칸의 군대에게 넘겨주었다. 
칭키스칸은 부하들에게 명령하였다. 고양이와 제비 꼬리에 솜뭉치를 매달아 불을 붙인 뒤 풀어주라고 명령한 것이다. 꼬리에 불이 붙자마자 고양이와 제비들은 그들의 집이 있는 성을 향하여 달려가거나 날아갔다. 조금 지나 성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기저기에 불이 붙어 성은 한순간에 불바다가 된 것이다.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성을 뚫고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호수아의 군대는 요단강을 건넜다. 요단강을 넘으면 그곳에 가나안 땅이 있다. 그렇게도 열망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이제 그들의 앞길을 막는 것은 없을 듯하다. 모든 것이 그들의 것이라고 기뻐할 즈음 생각 밖의 성이 나타났다. 여리고 성이다. 물론 여리고 성이 존재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견고할 줄은 몰랐다. 도무지 그 성을 정복할 것 같지 않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은 그들에게 매일같이 성을 돌라고 명하신다. 마지막 날에는 더 많이 돌라고 하신다.  그들은 매일 같이 성을 돌았다. 명령을 받았으니 그 명령에 순종한 것이다. 마지막 날 그들은 성을 일곱 번이나 돌았다. 그리고 소리를 지른다. 그 순간 성은 무너지고 여호수아의 군대는 여리고를 점령한다. 성을 무너뜨리고 정복한다는 이야기는 칭키스칸의 이야기와 별 다름없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성을 점령한 이야기를 단순히 믿음으로 승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 말은 분명히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안에는 우리가 세상을 사는 법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적어도 현실에 만족하려하거나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매몰되어버리는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노마드적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그 사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성을 쌓는 인생이 아니라 길을 내고 싶은 인생에게는 여호수아와 칭키스칸의 군대가 어떻게 성을 극복하였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창조적 영성을 가진 자만이 길을 닦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블루오션의 영성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우지 않는 적어도 창조적 모방만이라도 하려는 치열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적 인생을 원하신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장애라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블루오션의 영성을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주셨다고 믿는다.

우리 공동체에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많다. 특별히 재한몽골학교의 교사 신축문제는 우리 공동체 전체의 기도제목이다. 우리는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제한몽골학교를 세우고 정식 외국인학교로 인가받기까지의 어려움을 앞으로 있을 교사신축의 문제와 비교한다면 어떤 것이 더 어려운 문제일까? 전자도 후자도 매우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학교를 시작한 것은 1999년 12월 이었다. 8명의 몽골 아이들로 시작한 재한몽골학교는 현재 80명이 넘는 제법 규모를 갖춘 학교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학교가 세워지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었고, 주변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느냐며 조롱아닌 조롱을 하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우리 공동체는 포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를 제대로 된 외국인 학교로 인가받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했다.

2003년부터 나는 서울시 교육청을 드나들며 우리 몽골학교도 외국인 학교로 인가를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외국인 국제학교로의 인가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안된다고 부정적으로 말을 했다. 서울시 교육청의 직원은 말할 것도 없었고, 우리 안의 스탭들도 인가받는 일이 불가능하니 하지 말자고 나를 압박하였다. 
그냥 대안학교처럼 필요한 조건만 갖추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하자는 논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논리다. 적어도 우리 공동체와 나는 다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까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작한 공동체이다. 우리는 다르다.
나는 다르고 싶었다. 나는 창조하고 변화하는 삶에 관심이 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자신의 삶을 제한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모두가 못한다고 손을 들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면 나는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포기하면 그때부터 신이 나서 일을 하는 것이 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니 모두가 부정적으로 등을 돌리는 순간 나는 힘이 솟아난 것이다. 정말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다 포기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목사님, 이제 그만 포기하시죠. 도저히 인가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말도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안되는 이유를 가르쳐 주십시오"
"아니, 목사님께서 그것도 모르십니까? 여기 몽골 아이들은 모두가 불법체류자의 아이들이예요. 이 학교의 아이들 중에서도 대부분은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구요.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이런 아이들이 모여 있는 재한몽골학교를 정식 외국인 국제학교로 인가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공무원입니다. 이것은 억지예요"
"맞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아이들 자신이 대부분 불법체류를 하고 있어요. 그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은 공부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비록 불법체류자의 자녀이거나 혹은 그 아이들 자신이 불법체류를 하고 있다고 해도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하고, 그 아이들은 공부하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여한 권리가 있지요"
"그래도 안됩니다"

교육청의 논리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외국인 국제학교는 자국민이 세운다. 그들은 한결 같이 선진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미국인 학교나 일본 학교, 프랑스 하교, 독일 학교, 그리고 화교학교를 보라. 어디 한국 사람이 세웠으며, 누가 그 학교를 운영하는가? 모두가 선진국형 외국인학교다. 뿐만 아니라 그런 학교가 세워지면 우리 한국 아이들이 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많은 수업료를 내고 국제학교에 입학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몽골학교는 다르다. 정말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의 학교다. 한국인 목사가 세웠고, 수업료도 거의 없다. 누가 우리 학교에 입학하려고 하겠는가? 몽골 아이들이 아니면 누구도 오지 않는 학교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부가가치가 없는 학교다. 그런 학교를 가지고 무슨 인가를 받겠다고? 그러니 교육청에서 보면 한심하고 웃기는 일이다.
그들은 절대로 인가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나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우리 학교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 학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 학교는 세상 사람들이 보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학교다. 우리 아이들도 그런 평가와 차별 속에서 자라고 읶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비주류 아니 아웃사이더 학교일뿐이다. 마치 내가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나는 정말 그렇게 차별 받으며  살았다.
그래서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받은 그 많은 멸시와 조롱이 아파서라도 나는 우리 몽골학교가 인가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나의 오기이며 신념이다. 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입장이나 간절함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안된다는 말 한마디이면 족했다. 서류를 가지고 교육청에 들어가면 첫 장부터 이유를 댄다.  무엇이 틀렸다고...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를 핑계로 서류를 반려한다. 다시는 그 서류를 갖고 오지 말라는 듯이 그들은 서류를 박박 빨간줄로 그어가며 아주 아주 나를  경멸하듯이 내팽개치는 것이다. 나는 말없이 서류를 들고 돌아오곤 했다. 같이 간 스탭들은 힘이 빠지고 나에게 왜 이렇게 자신들을 힘들게 하느냐며 오히려 포기할 것을 설득한다. 제발 포기하자고...

그러나 그런 날이면 나는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웃는다. 또 하면 되지...
다시 서류를 만든다. 틀린 것은 고치고, 필요한 서류를 첨부한다. 그리고 다시 교육청으로... 그러면 그 공무원의 낯빛은 차갑다 못해 화를 낸다. 이젠 제발 찾아오지 말라고도 한다. 결코 안되는 일이니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도 해야겠다. 그래도 하여야 한다.
그렇게 찾아간 교육청이다. 2년이 지나도록 나는 인가를 받지 못했다.
이제 거의 목적지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그 공무원도 지쳤고, 나도 사실은 지쳐있었다. 누가 쓰러질 것인가? 마지막이다. 

"목사님, 이젠 정말 안됩니다. 이 학교에는 운동장이 없어서 안되요. 우리나라 교육법에는 반드시 운동장이 있어야 인가를 받습니다"
"어디 외국에 가 보세요. 외국에도 운동장 없는 학교가 많아요"
"그건 그 나라 일이구요. 우리나라 법에는 안됩니다.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마지막 회심의 한방이다. 이 마지막 스트레이트를 맞으면 나는 곧바로 쓰러질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는지 모른다. 정말 막막하다 못해 쓰러지고 싶었다. 힘이 빠지고 정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건 법의 문제다. 조건이 안되는 학교를 가지고 억지로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정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내가 포기하는 것이 그렇게도 좋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무언가 틈새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반드시 길은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있다.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은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먼저 포기하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있다.

' 운동장이라...'
운동장만 있으면 우리는 학교가 된다. 운동장을 만들면 된다. 운동장은 운동을 하는 넓은 공간이다. 그 공간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운동장이 없으면 어디선가 운동장을 빌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반드시 운동장을 소유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청에서도 우리가 우리 운동장을 반드시 소유하여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운동장을 빌리면 된다. 우리 학교 주변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다. 그렇다고 저 학교  운동장을 함께 쓰자고 하면 안되겠지?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장로회신학대학의 운동장을 빌리는 것이었다. 곧바로 장신대 총장실을 찾아갔다.

"총장님, 전 이 학교 졸업생 유해근 목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장신대 운동장을 우리 몽골학교 학생들을 위하여 십년만 무상임대를 해 주십시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장로회신학대학의 운동장을 빌려 무상임대 사용에 대한 서류를 갖고 교육청을 다시 찾았을 때에 담당 공무원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아 교육청으로부터 한 장의 인가서가 도착했다.
드디어 우리 학교가 이주노동자 자녀학교로는 처음으로 국제학교 인가를 받은 것이다. 2년여의 긴 시간을  넘어 우리는 정식 외국인 국제학교가 된 것이다. 우리가 이겼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한 것이다. 정말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종이 한 장이다. 

이젠 재한몽골학교의 교사를 건축해야 한다. 이미 서울시로부터 학교부지는 무상임대를 받았다. 이것만으로도 천지가 개벽할 변화다. 누가 우리에게 학교 부지를 만들어 줄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서울시가 앞장서서 우리에게 학교건축을 위한 부지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그 땅위에 학교를 짓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물론 많은 재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면서 마주한 장애물보다는 높지 않다. 
고양이 꼬리에 불을 붙여라! 아무리 높은 성곽이라도 그 성을 무너뜨릴 방법은 있다. 세상에 넘지 못할 산은 없다. 나와 우리 나섬은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루었다.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사역을 세웠다. 하나님이 주신 창조적 영성과 변혁에 대한 열망만으로 우리는 하나씩 그 사역의 내용을 채웠다. 불가능은 없다. 고양이 꼬리에 불을 붙여서라도 길 앞의 장애물을 극복하겠노라는 칭키스칸의 창조적이고 열정적인 고민만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노마드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노마드는 길을 가는 존재다. 그 길 위의 존재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노마드적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결코 절대적 장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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