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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하나님의 성공경역학4 <리브가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리브가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창세기 24:55-60 


1. 아브라함의 계보를 이은 사람은 리브가
오늘의 선택은 미래를 담보한다. 내일은 지금 선택한 것의 결과일 뿐이다. 결단과 선택 혹은 순종의 미학은 아브라함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떠나가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 열방의 아비가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아브라함은 단순하게 정리한다. 단순한 결단은 얼마나 중요한가?
나는 단순함을 배우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무 복잡한 사람이다. 조금도 머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니 말이다. 특별히 인간사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늘상 머리 굴리기에 바쁘다.

내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노동부로부터 인증을 받아 소위 경영이라는 것을 하면서부터는 더욱 복잡해졌다.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살이가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 작은 것에 집착하는 나를 볼 때는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무엇을 위한 사회적 기업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돈이라 말하지만 어쩐지 나는 아직 그런 원칙도 없이 살아간다. 아직 경영자의 삶은 살지 못하는 듯하다. 어느 날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여보! 나 말이지... 경영학을 한번 공부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세요. 내가 도와드릴께요."

아내는 참 좋은 여자다. 지금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내 삶과 우리라는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아마 그런 것이 오늘 내가 있게 된 가장 소중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아내를 언급한 것에 대하여 조금은 남부끄럽지만 아내는 내게 리브가 같은 여자다. 사회적 기업의 경영을 하면서부터 나는 어느새 경영학이라는 학문에 대하여 무척이나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경 속의 리브가를 만났고, 내 사랑하는 아내가 저 리브가 같은 여자가 아닌가? 착각하기도 한다.  
리브가를 배우면 진정한 경영학을 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도, 아내가 리브가 같은 여자라는 생각도 그 시점에 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계보를 잇는 여자다. 아브라함의 계보를 이은 것은 이삭이 아니라 리브가인 것이다. 이삭이 아니라 리브가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2.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후회하지 말라
내가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중요한 경영자의 덕목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도전과 결단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적기업 나섬의 경우는 그렇다. 지금 나는 무척이나 고달프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나 생각하면 간혹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함께 일을 하는 분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누가 시켜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나는 결코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힘이 들고 버거운 마음에 하는 넋두리이다.    
또 한편에서는 내가 하는 일이야말로 정말 해볼만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이지 나는  한 번에 몇 가지의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다문화 이주자 선교의 산 역사라고 자부한다. 내가 가장 먼저 시작했으니 내가 역사인 것은 당연하다. 내가 처음 이 사역을 시작할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이 사역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우리 아버지 장로님은 참으로 아들 하나 목사 만들어 잘 나가는 목회자 되었으면... 하고 기대도 하셨다는데, 이제 그 기대는 부질없게 되었다고 자탄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사역을 결단하고 선택했다. 자발적 선택이었다. 누군가에게 밀려서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했다. 그러나 그 사역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구로동 시절은 내게 애증의 연속이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함께 살았었다. 한때는 동지였지만, 지금은 동지가 아닌 사람들이다. 

얼마 전 이화여자대학교 채플에 가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내게는 남다른 경험의 시간이었다. 수많은 여대생들 앞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감사하게도 나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만약 눈이 보였다면 무척 떨렸을 테니 말이다.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누군가 나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나 누군지 알겠어?"
"윤재?"
"그래 나 장윤재야"

윤재는 내가 구로동에서 만난 친구다. 참 좋은 사람이다. 실력도 남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열린 친구다. 자신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타인의 삶에 대하여도 무한한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친구다. 윤재는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어 한국에 돌아와 이대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구로동 시절의 애증이 오버랩 되어 연락은 하지 않고 살아왔었다. 스치듯 잊혀져가는 사람들 틈에 나는 윤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윤재도 나를 기억한 것이었다. 반갑고 소중한 친구를 다시 만났다는 생각에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었다.

구로동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하나는 다시 찾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다시 찾아야 할까를 생각하니 또 그 시절의 아픔이 살아난다. 잊혀졌던 시간과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최초로 이주자 선교를 시작하고 그렇게 살아온 그 시절에 나는 눈을 다쳤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약간의 시력이나마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 얼굴들이  내 가슴에 떠오른다. 나는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애증의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고 또한 얻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목회자로 한국인 교회도 하고 있다. 솔직히 가장 힘든 것이 목회라는 생각이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아서 미루고 미루었던 것이 한국인 목회다. 그럼에도 가장 하고 싶은 것이 한국인 목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섬교회도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했다. 내가 결단하고 시작한 것이니 결코 후회는 없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정도의 목회라면 할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나섬의 교우들은 참 좋다. 그들의 가슴은 열려있고 생각은 진지하다. 나누고 섬기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우리 교우가 될 수 있으니 기본은 되는 이들이다.
우리 교회는 내 설교가 먹히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 설교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 사역이 좋아서 온 사람들이다. 물론 그런 내 억측은 문제가 많다. 도망갈 구석을 만들려는 내 열등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우리 나섬은 다르다. 내가 아니어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며 교회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얼마 전부터 나는 방송을 한다. '무지개 뜨는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이주자의 문제를 기독교의 시각에서 다루는 방송이다. 처음 내게 방송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에 참으로 난감하고 한편 가슴이 아팠다. 

"지금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아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방송을 진행합니까?"
"목사님, 다 알고 왔어요. 그래도 목사님만이 이 방송을 하실 수 있어요.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찾아왔으니 꼭 해주세요."

나는 대본도 읽을 수 없다. 방송의 '큐' 사인도 볼 수 없다. 그런 내가 어떻게 방송을 하는가 말이다. 차라리 내게 그런 제안을 하지 않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내게 찾아와 방송을 하자는 것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실은 내가 신학대학을 다닐 즈음에 방송을 한번 진행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잠시 가져본 적이 있었다. 방송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 잊혀졌다. 그리고 나는 잊혀진 것에 더하여 이미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절망하고 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나는 스스로 단 10미터도 홀로 갈 수 없다. 혼자서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화장실도 가지 못한다. 누군가 나를 고려장하고 싶으면 너무도 간단하게 세상에서 격리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단 1%의 저항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었다. 그런 내게 방송진행이라?    
이건 내게 대한 모욕이며 조롱이다. 나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하고 싶다. 정말 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방송도 하고,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리고도 싶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말이다. 그런 내게 방송을 하자고?

그날 저녁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물었다. 내가 과연 방송을 할 수 있을까를 묻고 싶었다. 아내는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였다. 큰 아이 영규도 마찬가지 대답이다.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욕이 생겼다.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에 대하여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결단했다. 해보자!

첫 번 방송 녹음을 하러 가는 날 나는 무척이나 몸이 좋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몸살이 나기 시작하여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방송은 해야만 했다. 미리 받아든 원고는 아내가 몇 번이나 읽어주었지만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마음에 부담감은 컸고 몸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송 원고를 소화하지 못하였으니 정말 답답했다. 그러나 방송은 시작되어야 했다. 내가 해보겠다고 스스로 결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기 싫다고 했으면 그런 부담감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내가 선택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지난 4월 마지막 주부터 방송에 나오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새로운 기쁨을 느끼고 있다. 아내는 내가 처음에는 헤매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담당 피디인 김혜민 자매도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 공동체에는 사회적 기업 나섬이 있다. 지금은 'COFFEE福(커피볶)' 사업도 한다. 내가 사회적 기업가가 된 것이다. 특별히  'COFFEE福(커피볶)'은 내게 큰 기쁨이다. 나는 커피를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아직도 그렇게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커피 사업을 한다. 하면서 더 즐겁고 재미가 있다. 때로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고달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 사회적 기업의 모든 아이템을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얻고 있다. 고달픔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선택하고 찾아가는 삶이니 후회하지 않는다. 이것 자체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고난을 선택했으니 그 고난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아내는 모험을 즐기지 않는다. 도박 같은 것은 관심에도 없어 보인다. 무엇하나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돌다리도 두들겨 가면서 살아간다. 학교 선생이 딱 제격인 여자다. 그저 소시민으로 아무런 욕심도 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혹은 아쉬운 소리 한번 하지 않으려는 완벽주의자이다. 내가 살아보고 말하는 것이니 그것은 이미 검증된 사실인 것이다.
그런 아내가 자신의 삶 중 단 한 번 큰 도박을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나와 결혼한 것이란다. 나와의 동행이 가장 큰 도전이며 모험이었다고 말하는 아내다. 
우리 아버지 장로님의 친구 목사님의 소개로 처음 만난 아내는 정말 컨츄리(?)한 여자였다. 강화도 먼 바다 주문도 섬에서 초임 교사를 하던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7월이었다. 솔직히 별 마음도 없이 만난 사이다. 옆에서 부모님이 자꾸만 만나보라고 재촉하시니 한 번 만나주자는 생각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로 그렇게 피차 한번 만나고 헤어졌다. 나는 아내의 전화번호도 묻지 않았다. 괜히 서로 시간만 빼앗기고 소모적으로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아내도 나처럼 한번 의례적으로 만나고 헤어지자는 생각에 동의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이었다. 아내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전화번호도 묻지 않고 돌려보내는 나 때문에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의례적으로라도 연락처를 묻는 것이 예의인데 그냥 헤어졌으니  기분이 무척 나빴던 모양이다. 이제야 여자를 알 것 같다. 여자에게 너무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어쨌든 내가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다. 아내를 붙잡는데 가장 큰 성공의 요인은 아마도 아내에게 매달리지 않은 나의 시건방진 행동 때문이 아니었을까?.
  
매달리지 않고 건방을 떠는 것만으로 아내는 자존심이 상했고, 어느새 내 아내가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청혼도 하지 않은 채 결혼을 했다.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다. 
아내의 인생을 건 모험은 실로 아찔한 일이다. 만약 내가 정말 싸가지 없는 놈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긴 나는 아내의 속을 많이도 썩였다. 아내는 도망가고 싶을 만큼 힘이 들었다고 했다. 정말 나는 아내를 제대로 품어 주지 못했다. 나는 너무도 이기적이었으며, 세상적이었다. 그런 내게서 도망가고 싶었을 아내를 생각하니 지금은 무척이나 미안하다. 
내가 아내를 리브가 같은 여자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는 그런 이유에서다. 아내가 나를 선택한 것이지 결코 내가 아내에게 결혼하자고 강요하지 않았다. 핑계 같은 나의 이 소리에 아내는 정 떨어진다고 핀잔을 하겠지만 이 부분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아내가 나를 선택했다. 나는 선택을 당한 사람이다. 아내가 결단하고 내게로 온 것이다. 그러니 리브가 같은 여자라는 말이다. 내가 오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아내는 리브가이다. 정말 사랑스러운 내 리브가이다. 이제야 하늘의 뜻을 알았다. 아내는 리브가가 맞다.


3. 열정과 결단의 여인 리브가
내가 리브가를 설명하자면 그녀는 열정과 결단의 여자라는 것이다. 정말 이토록 열정적이며 결단력 있는 기업가적 정신을 가진 여자가 또 있을까? 하긴 앞으로 우리가 찾아갈 많은 성서의 여인들 중 그런 사람 몇몇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리브가 같은 여인은 무척 특별하다.

먼저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을 따라가겠다는 결단력에 깜짝 놀랄 일이다. 한 번도 보지 않고 결혼할 사람을 결정한 것이다. 리브가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단을 한 것일까?
그녀의 결단력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리브가의 선택과 결단이 기업가 정신이며 성공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나섬에는 다른 어떤 이주자 선교단체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양평에 나섬 다문화 생태마을을 세웠다는 것이다. 내가 그 프로그램을 위하여 양평에 땅을 사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2004년 초였다. 당시 우리는 현재의 광장동에 선교센터를 세운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선교센터를 지을 때에도 아무런 근거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정말 힘이 들었고, 특별히 재정적인 어려움은 언제나 우리의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였다. 2003년 12월에 광장동 선교센터를 완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리교회 집사님 중 몇 분에게 몇 가지의 조건을 걸어 땅을 물색하라고 말했다. 첫째는 현재의 광장동에서 한 시간 이내의 거리. 둘째는 적어도 땅이 일만평은 넘어야 한다는 것. 셋째는 뷰(view) 즉 전망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거창한 조건이다.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고 말할지도 모르는 조건이었다.
2004년 봄 어느 날, 나는 김대운, 신점남 집사님과 현재의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불곡리의 땅을 보러 나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무슨 땅 구경인가? 그러나 나는 속사람의 눈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특별한 눈이 내게는 있었다.
그 눈으로 나는 그 땅을 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결정하였다. 당장 이 땅을 계약하자고 말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목사님, 돈은 준비되었나요?" "... ..."

지금 그 땅은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미래의 아니 현재의 부가가치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의미있는 재산이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문화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곳은 사회적 기업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의 사역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미래 선교의 재정을 충당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나와 우리 공동체가 그 땅에 대하여 결단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다. 힘이 들고, 부담스러운 결단이었지만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결단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결단했다.

두 번째로 리브가에게서 배우는 것은 열정이다. 작은 아들 야곱을 축복의 상속자로 만들고 싶은 어머니의 열정이다. 물론 이 부분에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6-07-01 11:18:23 노마드톡에서 복사 됨] http://nasom16.cafe24.com/bbs/board.php?bo_table=B02&wr_id=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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