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교를 뉴라이프 미션으로 바꾸자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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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인학교를 뉴라이프 미션으로 바꾸자


우리는 종종 정치인들이 하는 집회이거나 특히 보수적인 사람들의 여론몰이 집회 장소에 가보면 참석자의 많은 숫자를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이 많이 모였다면 그 색깔은 분명히 보수적이거나 혹은 정치적이거나 혹은 동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기이한 모습이다. 
어떻게 노인들이 한낮 정치집회의 머릿수이거나 여론조작의 대표선수들이 되었는지 참으로 서글픈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노인들은 정치행사 등을 비롯해 자리를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십상이다. 노인들은 그런 자리에 가면 무언가 나누어 주는 공짜 선물이 없는 지 두리번거리고 혹은 무료식사를 나누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찾아온다. 그렇게 주고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그것이 전제되어야 노인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런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질구질함과 거칠 것 없는 노인들의 모습 속에서 어떤 비애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나도 저렇게 늙어야 한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왜 노인들은 그런 곳의 동원수단으로 이용되고, 노인들 스스로  자존감을 상실한 채 비인간적 대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렇게 늙음에 대하여 항변하지 않는가?
못배워서? 아니면 가진 것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늙음은 이렇게 구질구질하고 파렴치 한 것도 상관하지 않는 경계선을 넘는 것이기에?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그러한 대우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가?
누가 이 서글프게 늙어가는 노인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이것은 우리 모두가 만든 늙음에 대한 태도이다. 이렇게 품위 없이 늙어도 되는 것처럼 함부로 노인들을 취급했고, 노인들은 그렇게 인격 없는 존재가 되어도 되는 것처럼 자존감을 상실한 채 살아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늙음은 존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가장 소중한 삶의 과정이라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망각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오늘 노인은 저렇게 함부로 취급당하고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인격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의 늙음은 인격도 품위도 자존감도 없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추장스럽고 천덕꾸러기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아! 서글픈 늙음이여.
노인학교를 만들어 노인들을 경로한답시고 하는 일이란 언제나 거의 그렇고 그런 것이다. 경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그 경로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없이 우리는 그 늙음에 낙인을 찍고 그들을 어린아이처럼 상대한다. '늙으면 어린 애가 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면서 늙음은 당연히 이렇게 대우받아도 되는 것처럼 우리는 행동한다.
그리고 노인들은 스스로 자포자기의 태도로 결코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존엄이거나 자존감을 포기한 채 동원의 수단으로 혹은 고민없는 대세의 여론몰이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나누어주는 그 알량한 선물과 음식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노인학교는 지금처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 누군가 반론을 제기할 것이 확실하지만 나는 그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반론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이라도 직접 노인학교를 찾아가 과연 그 늙음이 어떻게 취급당하고 있는지 경험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조금 차별화한 곳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학교 혹은 경로학교는 동네 경로당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나 또한 이렇게 단언하거나 그렇다고 결론을 맺고 싶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의 늙음은 거추장스러운 그 무엇임에 틀림없다.
교회는 어떤가? 교회 안에서의 늙음은 과연 무엇일까? 가끔씩 식사를 마련해 주거나 노인으로서 대우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것이 아닐까? 주도적인 늙음이 아니라 수동적인 늙음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늙음에 대한 자존감보다 늙음에 대한 자존심만 남은 그래서 이 늙음이 자존감이 아니라 구질구질한 자존심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닐까?
   
추한 늙음이 아니라 고귀한 늙음을 보고 싶다. 나도 그렇게 늙어야 하고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고귀하게 늙어가야 한다. 잘 늙는 것이 절실한 시대이다. 초고령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도 고민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당장의 필요만을 위하여 살아왔다. 그래서 늙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늙음에 대한 철학도 공부도 없다. 누가 그 늙음을 가르쳐 주거나 그렇게 늙어야 한다는 모범을 보여준 적도 없다.
이제는 잘 늙어야 하는 시대이다. 잘 늙지 않으면 거추장스럽고 정말 추해서 보기 싫은 늙음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것은 끔찍한 늙음이다.
늙음을 공부하자. 우리 모두 늙음에 대하여 고민하고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어떻게 늙고 어떻게 죽는가의 문제와 관계되어 있다.
노인학교를 '뉴라이프 미션' 또는 '뉴라이프 선교회'로 바꾸는 것이 대안이다. 구걸하는 늙음이 아니라 주도하는 늙음이 뉴라이프 미션이다. 살아있는 한 여전히 은퇴는 없음을 선언하는 그런 늙음의 미학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뉴라이프 미션이며 뉴라이프 선교회다.
뉴라이프 선교회는 더 이상 자존감 없이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거부하는, 살아있는 늙음을 선택하고 결단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죽는 날까지 소중한 인격과 품위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생명력 있는 삶으로 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늙음은 고귀한 것이다. 성서의 잠언 말씀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필자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노인들이여! 이제 노인학교와 경로학교를 거부하십시오.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늙음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십시오. 노인들의 늙음을 수동적인 늙음으로 전락시키는 그 어떤 자리에도 가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고귀한 늙음을 만들어가야 한다.
유해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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