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근목사와함께하는선교여행/네팔편(5) > 노마드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노마드 이야기

   
유해근목사와함께하는선교여행/네팔편(5)


포카라에서 만난 박마리아 수녀

26년 전 육군 군목으로 입대하여 각 종파의 군종장교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근무를 했었다. 카톨릭의 신부님, 불교의 법사님 그리고 기독교의 목사들이 함께 훈련을 받고 동기가 되었다. 내가 처음 입대하여 영천의 제3사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신부, 법사 그리고 우리 목회자들이다. 그때의 분위기는 어떠했을까? 4개월여를 함께 훈련을 받고 각 부대로 흩어져 나는 연대급 교회로 가고 신부님들과 법사님들은 사단급의 성당이나 법당으로 갔다. 4개월을 함께 고된 훈련을 받고 생활을 했다면 그 관계는 특별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참 묘하게도 우리 사이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종교 간의 관계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분위기가 묘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중 신부들과 법사들은 그런대로 대화가 되고 사이가 좋아 보였지만 목사와 신부, 목사와 법사의 관계는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왜 그럴까?
특히 신부들과 목사들의 관계는 물과 기름 같았다. 함께 어울리거나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갈등의 조짐도 있었다. 훈련소에서 느낀 점은 그랬다. 같은 동기들이라고 하지만 우리끼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신부들도, 목사들도 끼리끼리다. 겉으로야 그리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별 내키지 않는 그런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느꼈었다.

그런데 내가 강원도 양구에서 홍천으로 근무지를 옮기고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은 공교롭게도 성당의 신부님이며 법당의 법사님이었다. 그들이 혼자 사는 홀아비 신세이니 그렇고, 나도 결혼을 했다하지만 아내는 교사로 함께 살지 못해 나 또한 홀아비 신세로 같은 처지였기 때문일 게다. 우리는 종종 만나 즐거운 오락을 했다. 오락이라야 말이 오락일 뿐. 말하기 그렇지만 신부님과 법사님과 목사가 앉아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궁금할 터이지만 여기서 그 것을 공개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한 달에 한번 꼴로 만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주로 성당의 신부님 사택에서 모였다.  
그러면 성당의 신부님은 먹을 것을 준비했다. 성당에는 먹을 것이 참으로 많았다. 혼자 사는 신부님이 그것을 다 드시지는 않았으니 우리가 만나는 날은 잔치날이나 같았다. 법당의 법사님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나와 같은 동기생이었는데 나는 그를 잊을 수가 없다. 그가 전역을 하던 날이었다. 입고 있던 군복을 벗고 승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타고 다니던 자동차  키를 법당에 내려놓았다. 자동차 대신 흰고무신을 신은 그는 나에게 이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악수를 건넸다. 어디로 가는가 물으니 해인사로 가서 승려 생활을 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만나려면 어디로 찾아가야 하는가 물으니 중이 가는 곳이 절이니 절로 오라고도 했었다. 그의 웃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는 것을 보니 참으로 기이하다. 목사로서 신부님과 법사님과 함께 그리 잘 어울리고 즐겁게 살아본 사람도 그리 흔치는 않을게다. 나는 그들과 조금도 어색함 없이 지내었다. 그들과 책 이야기를 했고 종교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었다. 어떨 때는 여자 이야기도 했는데 그때는 거의 나 혼자 말을 하기도 했다. 신부님과 법사님은 이런 것 모를 것이라며 웃기는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내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면 나는 신이 나서 몇 배로 뻥을 튀겨가며 얘기했던 기억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친하게 지냈었다.

그리고 신부님과 법사님은 전역을 했고 나도 내 갈 길을 가야했다. 그 후 나는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종교는 참으로 독선의 울타리를 설정한다. 그 독선과 배타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네팔의 포카라(POKHARA)에서 만난 박마리아 수녀님은 지난 시간 잊었던 그 신부님과 법사님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 일행이 포카라의 페와호수(FEWA LAKE)를 보트로 돌고, 페와 호수 위의 작은 산길을 걷고 내려와 찾아간 곳이 박마리아 수녀님이 계신 성당이었다. 네팔의 포카라에도 한국인 수녀님이 계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반가운 만남이었다. 수녀님들은 우리 일행이 찾아갈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김치전을 부쳐놓고 점심을 준비해 놓으셨다. 고마운 분이었다. 
박마리아 수녀님과의 만남은 매우 신선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박수녀님과 함께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포카라 빈민촌의 세인트 폴 해피 홈(St.PAUL HAPPY HOME)이라는 곳을 찾았다. 수녀님들은 가난한 네팔인들이 살고 있는 빈민촌에 작은 공부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소박한 느낌의 공부방이다. 네팔인 보모들이 밥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이었다. 수녀님들은 소박했다. 그들의 행동과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보여주기식의 사역이 아닌 진정성있는 모습이 느껴졌다.
박마리아 수녀님과 그런 이야기도 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보시고 왜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지 아파하고 계실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금을 그어놓고는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모르신다고 하실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만든 경계선을 절대적 가치라고 고집하는 우리의 그 독선에 대하여 하나님은 관심 없으실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화해하고 일치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실 것이다.  

우리 교회는 너무 포장이 많다. 우리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독선적이다. 소박함을 되찾아야 한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작은 공부방을 보면서 거꾸로 포장된 우리 사역이 부끄러운 것은 왜일까.

박마리아 수녀님을 만나고 티벳 난민촌을 찾아가는 차안에서 자꾸만 오래전 군종신부와 법사님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종교의 벽을 넘어 친구로 살았다. 그들과 나는 종교의 담 안에 머물지 않았고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며 함께 놀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종교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래서 허심탄회하게 놀았었다. 차라리 그렇게 놀았던 그 26년 전의 그 시절이 좋았다. 자꾸만 종교의 벽안에 나 자신을 숨기려하는 그 허위를 어떻게 할까. 그때 나와 신부님과 법사님은 함께 놀면서도 소박했다. 성당이 교회 같았고 법당이 성당 같았다. 우리 안에서는 목사도 신부도 법사도 친구였는데... 그 시절이 그립다. 그들이 보고 싶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6-07-01 11:18:46 노마드톡에서 복사 됨] http://nasom16.cafe24.com/bbs/board.php?bo_table=B02&wr_id=230


hi
   


[04982]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로 1(광장동 401-17)
나섬공동체 대표전화 : 02-458-2981 사단법인 나섬공동체 대표자 유해근
COPYRIGHT © NASOM COMMUNIT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