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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72 우리가 살아남는 마지막 길


우리가 살아남는 마지막 길

미국의 세계적인 미래학자이며 경영학의 대가인 와튼 경영대학원의 제라미 러프킨은 '소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세계는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규모의 경제학에서 속도의 경제학으로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미래는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접속하고 공유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말이다. 뿐만아니라 규모의 경제에서 속도의 경제로 바뀐다는 주장이다. 일면 일리가 있다. 이 말을 좀 더 확대 해석하면 우리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다. 
우리는 신학적으로 나그네다. 아니 신학을 말하지 않더라도 인생 자체가 나그네 인생이다. 언제 어떻게 불려갈지 모르는 삶이 우리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 처럼 착각을 하고 살아간다. 언제 불려갈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소유의 욕망이 그거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오해이며 착각이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망각하고 또다시 탐욕의 삶을 반복한다. 소유의 삶에서 접속의 삶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규모의 경제는 더하다. 소위 규모의 경제는 합리성과 무관하지 않다. 합리성이라는 논리 앞에 규모의 경제는 설득을 얻는다. 교인수와 헌금 그리고 다시 건축으로 반복되는 규모의 논리는 우리의 인생을 반복하여 악순환하게 하는 논리다. 그러니 규모의 경제학은 교회를 건축하고 다시 부수고 또다시 건축하여 교인 수 늘리고 몸집 키우는 목회에 매몰되도록 강요하는 악의 축이다.
러프킨 교수는 그런 규모의 논리가 아닌 속도의 관점에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자고 주장한다.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지지한다.
속도는 21세기의 화두다. 아니 이미 13세기에 칭기즈칸에 의하여 검증된 논리다. 칭기즈칸은 공간의 개념을 넘어 속도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얼마의 땅을 소유했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국경과 경계를 허물어 버린 사람이다. 그는 규모를 말하는 천박한 자본가가 아니었다. 그는 동서를 융합하고 다리가 되었으며 문화와 철학과 민족의 한계를 통섭한 영웅이다. 그는 규모가 아니라 속도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전세계를 가장 빠르게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말을 타고 경계라는 규모의 사고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간의 규모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는 속도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21세기 교회는 작아져야 한다. 규모가 작아져야 오히려 움직임이 빠를 수 있다. 새로운 유목민의 세상에서 몸집은 오히려 장애가 된다. 모든 것이 속도와 연관되어 있음이다. 규모를 자랑하는 자는 망한다. 이제는 속도를 지배하여 언제나 융합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가 승자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규모를 묻지 말아야 한다. 얼마나 모이는가, 얼마의 헌금이 들어오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세상과 접속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한다. 그래서 세상의 변화에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공룡이 사라진 것은 몸집 때문이었다. 기후가 변하고, 먹거리가 변하고 있었지만 공룡은 몸집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오히려 변화하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여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공룡은 움직임이 느렸다.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그것이 공룡이 사라진 이유다. 몸집이 크면 빨리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규모가 아니라 속도다. 소유가 아니라 접속이다.    
교회도 작아지면 빨라진다. 모든 결정과 움직임에 순발력이 생긴다. 변화하는 세상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다. 세상에 끌려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견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세상에 끌려가는 것에서 아예 벗어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경직되어 있다. 입으로 먹을 수만 있을 뿐 모든 기능은 마비되었고 동맥경화를 넘어 독점으로,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의 늪에 빠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치가 없다. 그 이유를 모른 체한다.전형적인 공룡의 딜레마다. 우리는 죽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다시 살아남아야 한다면 러프킨의 말에 주목하여야 한다. 소유가 아니라 접속이며 규모가 아니라 속도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더 작아져야 한다. 축소되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하는 축소화가 답이다.
큰 교회는 쪼개라. 독점은 해체되어야 한다. 나누고 작아지는 역발상의 결단이 우리를 살게 한다. 더 이상 소유에 집착할 것이 아니다. 이제는 버리고 비우는 것이 오히려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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