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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76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와 한국교회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와 한국교회

케레이트족은 1200년대 초 그러니까 테무친이 1206년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몽골초원의 모든 부족과 씨족을 하나로 통합하기 직전 테무친을 도와 몽골이라는 제국을 만드는 일에 가장 크게 도움을 주었던 부족의 이름이다. 당시 케레이트의 칸은 옹칸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테무친의 아버지 예수게이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케레히트족은 당시 초원의 부족들 가운데 유일하게 네스토리우스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초원에서 예배를 드리는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였던 것이다. 케레히트의 옹칸을 인생의 멘토로 생각하며 동맹을 맺고 함께 초원을 통합하고자 했던 테무친에 대하여 어느 날 옹칸은 두려움과 동시에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테무친을 죽이고자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그 음모가 결국 케레히트의 종지부가 될 줄 옹칸은 몰랐다. 테무친은 옹칸의 음모를 알고 초원으로 도망하게 되며 그때 그를 따랐던 발주나 호숫가의 동지들이 몽골제국을 이루는 주춧돌이 된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들이었던 케레히트의 옹칸이 가졌던 질투와 두려움은 결국 초원의 기독교를 확산시키는데 큰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그 후로 칭기즈칸은 몽골제국을 이룩하고 그 제국의 이름을 '예케 몽골 우르스'라 했다. 몽골이라는 작은 부족이 초원의 모든 부족과 씨족을 하나로 묶어 만든 제국의 이름이 몽골인 것이다.
작은 부족 몽골을 제국으로 만드는 길목에서 케레히트족이 없었다면 칭기즈칸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 물음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결국 테무친은 모든 장벽을 허물고 칭기즈칸이 되었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들이었던 케레히트족이 테무친을 도와 몽골제국을 세웠다면 그 몽골은 오늘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원나라를 끝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동방기독교가 존재하였다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배경에는 케레히트와 테무친의 갈등이 있었다. 물론 칭기즈칸의 막내아들 톨로이의 아내이며 손자 쿠빌라이칸의 어머니였던 소르카크타니는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이었다. 몽골 제국의 시작과 황금기에는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들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에베소 종교회의 과정에서 이단으로 정죄하여 동방으로 쫓겨난 사람들이다. 네스토리우스는 주후 428년 콘스탄티노플 그러니까 오늘의 이스탄불의 대주교였다. 그러다 431년 에베소에서 종교회의가 열리는데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시릴로의 음모에 의하여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이다. 에베소 종교회의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종교회의다. ‘마리아는 인간인가 신인가?’에 대한 논쟁이 그것이다. 그때에 모든 사람이 마리아는 예수님처럼 신성이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유일하게 네스토리우스만이 마리아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 주장하였고 그것이 그가 이단시 되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교리로 따져보면 네스토리우스가 정통이고 그 외의 주장이 오히려 이단적이다. 물론 그런 에베소 종교회의를 따라 서방기독교는 마리아에게 신성이 있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오늘 한국 카톨릭의 교리이기도하다.
그러면 거꾸로 오늘 한국교회에서 마리아에게 신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개신교인이 있는가? 마리아가 인간인가 신인가를 묻는다면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마리아는 사람일뿐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 역사와 교리는 그렇게 오늘 우리 안에서 충돌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자리에 대하여 의심을 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동방기독교의 전승이 있었다. 서방기독교와 그들의 교리에 절대적 권위를 주는 것은 역사를 넘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를 연구하고 찾아나가는 한국교회이어야 한다. 몽골과 초원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네스토리우스 기독교가 자꾸만 살아난다. 이미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서는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동방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단이었다는 이유에서 일까? 아니면 서방기독교의 전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교리화된 기독교의 관성 때문일까? 

13세기 몽골초원에는 네스토리우스라는 동방기독교가 존재했었다. 동방기독교는 초원의 사람들에게 이미 의미있는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초원의 기독교는 유입되었음이 분명하다. 그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우리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서방기독교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들어온 동방기독교도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존재했던 신앙이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나는 유목민 목회를 하면서 특별히 몽골 초원과 유라시아 대평원의 실크로드를 역 추적하면서 이미 우리에게 동방 기독교가 들어왔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130년 이전, 아니 조선조 중기에 들어왔던 카톨릭을 포함해 지나치게 서방기독교에 의존하는 신학과 역사만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주후 5세기에 시작된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의 전통이 당나라를 넘어 신라에까지 들어왔었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세워지면서 그 영향력은 더욱 가속화되기도 했다. 물론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그 후 급속하게 사라진다. 그것은 종교의 혼합주의 때문이다. 몽골의 종교정책이 모든 종교를 용인하는 종교자유주의를 선택함에 따라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분명히 그 초원의 제국이 만들어졌을 때에 우리 한반도에도 네스토리우스 기독교가 들어왔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몽골의 공주들 혹은 그 당시 수많은 이주민에 의하여 동방기독교가 우리에게 유입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우리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흔적을 찾지 않는 것일까? 
유목민 목회를 하면서 새로운 동방기독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려 한다. 동방 기독교의 뿌리가 우리 안에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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