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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필리핀 행복학교2 코피노와 행복학교

코피노와 행복학교

구태여 코피노를 강조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코피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알아야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대부분 혼혈된 민족이므로 코피노를 굳이 강조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도하였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코피노가 불쌍해서도 아니다. 그들을 선교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코피노라는 세 글자만은 넣고 싶다.
왠지 코피노라는 이름 뒤에는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서글픔 같은 게 녹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과 한이 섞여있는 것 같은 아픔이 그들 안에 있는 듯해서이다. 필리핀에는 코피노 아이들이 약 3만 명 정도 있다 한다. 한국인 아버지들의 욕망과 욕정의 결과이니 무어라 할 말이 없다. 남자란 동물의 흔적을 남긴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1571~1898)로 약 3백 여 년을 살았으며, 미국의 식민지(1898~1946)로 50여년을, 그리고 일본의 지배(1942~1945)도 받았으니 그 땅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섞여 살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혼혈은 당연하고, 다양성의 문화는 상식인 셈이다. 굳이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엄마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들은 섞여 생존하고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필리핀의 현실이라고 해도 과연 코피노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혼혈에도 종류가 있다. 제국주의의 피해자로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혼혈이 있는가 하면 돈의 힘으로 여자를 사고 그 돈으로 욕정을 해결해 만들어진 혼혈이 있다. 이것이 어떻게 상식이며 당연한 것인가?
필리핀은 폭력적 제국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로부터 피해를 당하면서 그렇게 섞여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피노, 자피노, 차피노 그리고 코피노다. 정조관념이 약해서 혼혈이 생긴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만약 필리핀이 약자가 아닌 강자였다면 그렇게 섞여야 했을까? 정조관념이 약하다면 그것은 문화가 아니라 생존의 본능으로부터 시작된 자기방어의 한 형태일 것이다. 폭력과 압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했던 약자들의 고통이 혼혈이다. 강자는 배설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살 듯 약자들은 생존하는 것이 우선적 본능인 것이다. 약자들에게는 혼혈보다 ‘지금’이라는 현실의 문제가 더 크다.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언제나 사생아를 낳는 거다. 그동안의 역사가 그랬다.

코피노는 약자의 한이다. 그들이 돈이 많고 강한 존재들이었다면 코피노가 아니라 그 반대가 되었을 거다. 약자들의 고통을 상식이라 말하는 것은 어쩐지 천박스럽다. 미안한 마음은 갖고 살아야 한다. 약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미안하다 필리핀의 코피노여!' 하면서 조금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우리의 천박한 자본주의가 약자들에 대한 우월주의와 가벼움의 극치를 달리는 이중성의 인간을 만들었다. 강자들의 약자들에 대한 일방적 승리를 당연한 것이며 보편적인 문화라 규정하는 것은 폭력이다. 최소한의 양심은 살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의 종군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의 중요한 의제로 삼고 있다. 사과하고 반성하고 거기에 합당한 보상을 하라 외친다. 맞다. 반드시 그 입장을 포기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것은 우리만의 문제가아니라 보편적 가치의 문제이고 역사의 정의와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반드시 사과와 합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정의가 살아 있음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코피노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우리에 대한 필리핀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들이 말을 안했다고 무죄가 되는가? 필리핀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도덕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필리핀에 우리의 아이들을 남겨 놓았다. 우리 남자들의 동물적 본능이 필리핀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진화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가 번식의 본능을 자극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우리의 아이들임은 분명하다. 

행복학교는 그런 코피노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앙겔레스는 유독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곳에 미군이 주둔했을 때에는 미군의 기지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인들이 찾는 골프와 성문화의 집결지가 되었다. 낮에는 골프를 치고 밤에는 필리핀 여자들과 하룻밤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는 소문으로 수많은 한국인 남자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코피노가 가장 많은 곳이 클라크 앙겔레스가 되었는가보다. 누구의 잘못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가 책임지자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코피노 아이들이 사는 곳에 가 보았다. 가난하고 불쌍했다. 한국인과 관계된 아이들이라면 잘 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들의 삶은 우리네 산업화 이전의 빈민촌을 연상시킨다. 오래전 중랑천 판자촌이 떠오르는 곳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중랑천은 물고기가 살아가는 생명이 충만한 하천이지만 예전에는 쓰레기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판자촌의 대명사였다.
더럽고 불결하고 오염된 그곳에서 우리네 선조들은 뜨내기처럼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필리핀에 가니 떠오른다. 반복되는 역사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역사는 이렇게 국경과 경계를 넘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피해자였던 역사에서 가해자가 되고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 민초들의 절망의 역사가 여기에 또 이렇게 반복되고 있다.

행복학교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 학교다. 세상은 인간에 의하여 변화되며, 인간은 교육을 통하여 변화된다. 그러니까 역사는 교육과 고민하는 인간들에 의하여 바뀌는 것이다. 교육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학교는 그 교육의 현장이다. 가장 좋은 선교는 학교를 통한 교육으로부터 이루어짐을 나는 몽골학교를 만들어 운명하면서 알았다.
그래서 사람을 키워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 나섬의 선교전략이다. 앞으로 학교는 곳곳에 세워질 것이다. 나섬이 가는 곳에는 학교와 선교적 기업이 세워질 것이다. 나는 우리의 갈 길을 그렇게 정해 놓았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선교가 이루어지고 사람을 키워야 그 민족 공동체가 회복됨을 알기 때문이다. 필리핀 행복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로부터 키워진 사람들을 지속가능한 선교적 경제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행복학교에는 한국어 교육이 필수다. 여기에 직업 기술교육이 첨가된다. 봉제와 컴퓨터, 그리고 바리스타 교육까지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가르칠 예정이다. 그중 한국어 교육은 가장 중요하다. 한국어를 알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기회를 만들어 주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기술 교육을 받았다면 그 기술을 경제에 활용할 수 있는 선교적 기업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일을 하면서 또 어떤 고통이 뒤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다. 이 사역은 희망과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을 거다. 왜냐하면 그 실패도 결국 그 선교의 한축이기 때문이다. 선교가 보여야 한다. 실패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선교하는 교회가 보여야 한다. 선교하는 교회만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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