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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161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

 

예수님을 소개하던 빌립에게 나다나엘이 한 말이다. 나사렛이 어떤 곳이었기에 나다나엘은 그렇게 나사렛을 편견과 차별의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오늘은 우리 일행과 함께 나사렛을 찾았다. 한 점 구름도 없이 맑고 청명한 날씨다. 아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느껴지는 날씨다.

우리가 찾아간 나사렛에서 나는 2000년 전의 예수를 상상해 본다. 아버지 요셉의 뒤를 이어 목수의 삶을 살았을 예수님의 30년 삶을 생각해 본다.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던 나사렛에서 자라며 일하고 살았을 예수를 생각해 보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자라났을 그의 메시아적 자의식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기다릴 수 없어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아파하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말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각하기까지 그의 방황과 고민은 얼마나 심했을까? 나사렛에서 인간 예수를 만나보고 싶었다. 사람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했던 그 버려진 땅 나사렛에서 나는 홀로 버스 안에 남아 글을 쓰며 많은 생각을 했다.

 

신영복 선생은 역사는 열등감 없는 변방성에서부터 진보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열등감 없는 변방이란 나사렛이다. 나사렛에서부터 시작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갈릴리를 거쳐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절정에 이르렀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스며들어가는 역사의 진행을 신 선생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역사는 결코 예루살렘에서부터 준동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버려지고 차별받았던 나사렛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열등감 없는 변방성을 사랑했던 예수님, 그리고 신선생의 통찰력까지 나는 그 나사렛에서 나와 나섬의 자리를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주류가 만든 역사가 아닌 비주류 아웃사이더가 만든 역사가 좋다. 그래서 나와 나섬은 변방이다. 변방이기를 사랑하고 자존한 나다. 문제는 열등감이다. 열등감 없는 변방성이어야 한다. 열등감 없는 변방성이 아니고서는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열등감 없는 변방성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제부터 그 열등감 없는 변방에 머물고 그 자리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왔다. 예수가 그 증거다.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나사렛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자랐고 고민했으며 사역했고 인간을 사랑했다. 나사렛이 아니고 예루살렘이었다면 그런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고민과 결단은 없었을 것이다. 나사렛에서 예수가 살았음이 은총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곳은 인간이 차별했던 그 땅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너머에 계시다. 예루살렘이 아닌 나사렛에 예수가 오셨음이 희망이며, 그러므로 우리가 존재하여야 할 곳은 언제나 나사렛이어야 한다.

예루살렘은 예수를 죽인 땅이다. 하지만 나사렛은 예수를 자라게 한 땅이다. 그 두 공간은 다르다.

열등감 없는 변방성이 역사를 견인했다는 신선생의 통찰력은 옳다. 그 증거의 변방 나사렛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갈 길을 다짐한다. 나사렛 같은 삶과 공간을 더욱 사랑해야겠다. 더 이상 예루살렘의 목회와 부요함, 자랑거리와 성공신화에 대해 콤플렉스와 열등감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기를 가슴깊이 다짐했다.

내 삶의 자리인 나섬, 나사렛 같이 작은 나의 존재와 내 목회의 자리를 끝까지 사랑할 것이다. 끝까지 변방으로 남아있어 나섬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예루살렘이 아닌 나사렛을 지향하는 나섬과 몽골학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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