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유해근 (1) 2017-04-03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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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유해근 (1) 2017-04-03

 인간 대우 못받는 이주노동자 현실에 분노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시력 장애둘째 아들 지적장애로 고난 겹쳐


[역경의 열매] 유해근 <1> 인간 대우 못받는 이주노동자 현실에 분노 기사의 사진

나섬공동체 대표 유해근 목사가 최근 서울 광진구 광장로 재한몽골학교에서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나섬공동체 제공

                        

오른쪽 발이 심히 아리다. 얼마 전 바닥에 놓인 교자상을 잘못 밟아 발바닥이 찢어졌다. 두 번의 봉합 수술을 했으니 꽤 심각한 부상이었다. 넘어지고 부딪히는 것은 내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느끼는 충격은 다른 사람보다 크다. 어둠 가운데 갑자기 가해지는 아픔은 말할 수 없이 무섭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매일 아침 아내의 도움을 받아 사무실로 간다. 누군가의 안내가 없을 경우 하루 종일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날은 처지가 원망스러워 하나님께 불평했다. 왜 나를 섬에 갇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존재로 만드셨냐고 말이다. 하나님은 내가 그 섬을 세계로 만들어 줬잖니라고 하셨다.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공동체는 몽골, 인도, 베트남, 중국, 필리핀, 아프리카와 중동의 각 나라에서 모인 이들로 이뤄졌다. 그들을 섬기는 사역을 한지 어느 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나그네를 섬기는 공동체의 준말인 나섬공동체. 이곳이 나의 사역지다. 공동체의 모태인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에서 의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멤버십 카드를 소지한 이주노동자들이 2500여명에 이른다. 몽골인 근로자 자녀들을 위해 1999년 개교한 재한몽골학교에서는 현재 270여명의 학생들이 세계를 변화시킬 인재로 자라나고 있다. 이 외에도 나섬공동체는 문화진흥원과 어린이집, 은퇴목회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섬기는 뉴라이프동대문선교회 등을 세워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너무나 약한 존재인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당최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셨다.

 

군 제대를 하고 본격적으로 목회사역을 하기 전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남들이 가지 않는 목회의 길을 가겠다는 것과 약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겠다는 것이다. 막상 마땅한 길을 찾기 어려웠다.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아주 놀라운 길에 나를 서게 하셨다. 미국 유학을 결정한 나를 구로공단으로 부르셨고 우리나라에 와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섬기게 하셨다. 아무도 하지 않던 사역이었다. 당시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는 매우 비참했다. 노예나 짐승처럼 취급을 받았다. 그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슬픔을 공감하며 함께 분노했다.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탈이 났다. 점점 시력이 떨어지는 병에 걸렸다. 그 시기 공교롭게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둘째 아들이 지적장애아로 태어난 것이다.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반복돼 일어났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가 떠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을 간구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다. 바울은 깨달았다. 자신이 약할 때 예수가 오신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도제목이 다 이뤄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일까. 나의 약함을 신앙적인 시각으로 재해석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경험할 수 있는 큰 은혜일 것이다.

 

내 눈이 잘 보였다면, 나의 아들이 건강했다면 내 삶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을까. 아닐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강하게 보이려 했다. 그때 하나님은 나를 쓰시지 않았다. 약해지고 미미한 존재가 됐을 때 들어 쓰셨다. 이렇게 깨닫기까지 긴 연단의 시간이 있었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려 한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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