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유해근(5) 2017-04-07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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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유해근(5) 2017-04-07

[역경의 열매] 유해근 <5> 죽기로 작정하고 간 바닷가에서 예수님 만나

실명 위기 절망의 늪에서 건져 주셔… 외국인 근로자 사역 위해 성수공단으로

[역경의 열매] 유해근 <5> 죽기로 작정하고 간 바닷가에서 예수님 만나 기사의 사진

1990년대 중반 서울 성수공단의 외국인 근로자들과 유해근 목사(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나들이를 가서 찍은 사진.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성수공단에서의 사역은 행복했다.




둘째 아들이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미국 유학을 포기한 뒤 나는 무척 방황했다.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경북 상주로 내려갔다. 도피였다. 상주 함창벌판의 한적한 곳으로 차를 몰아 그곳에서 아이들과 뛰어놀곤 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척 했지만 불쑥불쑥 원망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아이들만 데리고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를 했다. 둘째의 치료를 위해서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상주에서의 시간은 쓸쓸했다. 두 달여간 그곳에 더 있다가 안양으로 왔다. 

구로공단으로 가게 된 것은 1992년 겨울이다. 남들과 다른 사역을 하고 싶었는데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선교하는 게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장애를 가진 둘째를 내게 주신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가 한심해 자학하는 심정으로 구로공단에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 머문 몇 년의 기간은 내겐 너무나 괴로운 시간이다. 노예처럼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한과 분노에 내 감정을 투영했고, 사역이 잘 이뤄지지 않아 생긴 자괴감도 얽혔다. 함께 사역하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운 일도 겪었다. 상처받는 이들이 있을까봐 차마 말을 꺼내기는 조심스럽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어느 날부터 눈에 핏발이 서고 잘 보이지 않았다. 안과를 찾았다. 급성 포도막염이라 했다. 증상이 매우 심각하다 했다. 시력이 점차 떨어져 결국에는 잃을 것이라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예기치 못한 두 번째 시련이었다.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시력을 잃었다. 보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다. 저주라고 생각했다. 더없이 약해지는 나 자신이 용납이 안됐다.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에 시달렸고 습관처럼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95년 2월 강원도 동해시로 향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으니 나도 하나님을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지독한 교만이었다.  

바다에 빠져 죽기로 작정하고 새벽에 묵호항으로 나왔다. 눈은 침침하게 겨우 보일 때였다. 항구 앞바다에는 모닥불을 피워 놓고 고깃배를 기다리는 노파들이 있었다. 바닷가로 걸어갔다. 참 웃지 못 할 이야기지만 죽으러 가면서도 너무 추워서 잠시 그 노파들이 있는 모닥불 쪽으로 몸이 움직였다. 그 새벽에 웬 젊은이가 다가오니 할머니들이 다 쳐다봤다. 그리고 그날 그 새벽 나는 믿을 수 없는 체험을 했다. 노파들 사이에 어슴푸레 보이는 것은 떨고 계신 예수님이었다. “여기 왜 왔느냐”고 물으셨다. “죽기 위해서요. 당신이 나를 버리셨잖아요.” 나의 원망을 들은 주님은 말씀하셨다. “야, 이 바보 같은 놈아 너를 죽게 하려고 고난 가운데 몰아세운 게 아니야. 이 땅의 고통당하는 자의 삶을 네 몸뚱이로 느껴보라고, 그들을 입으로만 위로하지 말라고 네게 절망을 준 거야. 절망은 곧 너를 사랑해 네게 준 은총이다.” 동해바다 앞에서 무릎 꿇고 한없이 울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시는지 그동안은 몰랐다.  

마음을 다잡고 돌아왔다. 며칠을 금식하며 기도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섬기라는 확답을 들었다. 구로공단의 생활을 정리하고 뚝섬 성수공단으로 향했다. 성수동 상원교회 지하실 한구석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행복한 사역의 출발이었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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