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경제 16 바울처럼 살고 싶다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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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 경제 16 바울처럼 살고 싶다

데살로니가전서 2 : 9, 고린도전서 9 : 7- 12

 

 

바울의 자존감의 원천은 경제적 자립에서 시작된다

 

인간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순간은 경제적 빈곤으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뿐만아니라 그 구차스러운 순간에 그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거나 혹은 그 이유로 자신의 고유한 권리와 자유를 침해받게 된다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주민 선교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이런 구차스러운 모욕과 참기 어려운 굴종의 상황을 때때로 경험했다. 그것은 오늘의 내 생각과 고민 그리고 나아가 자립해야 한다는 거의 강박관념 같은 철학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처음부터 경제적 자립이 없는 특수목회와 이주민 선교는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경제적 자립은 나섬의 목회와 역파송의 선교, 나아가 전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가치이고 목적이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경제적 자립을 위하여 노력했고 고민해왔다. 만약 그런 고민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내 사역과 삶은 헛수고라 아니할 수 없다. 나는 반드시 나섬의 사역과 몽골학교의 미래를 위하여 경제적 자립은 물론이고 한국교회의 미래 선교와 목회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함으로 제시하려 한다.

내가 발견한 바울의 사역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립하는 선교,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선교를 할 때만이 바울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를 규정할 때에 결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했던 선교전략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선교전략이다. 바울이 언제나 자신만만하며 당시의 원사도 즉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 그룹들과도 동등하게 선교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제적 자립과 자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와 자립이 없는 선교는 오래갈 수도 없을 뿐더러 자존감있는 선교를 할 수도 없다. 나 또한 바울처럼 당당하고 자유롭고 싶다. 바울처럼 그렇게 선교하고 싶다. 나는 그것을 열망하며 바울의 선교를 내 선교의 모델로 삼고 싶다.

물론 바울은 빌립보에서 자주장사 루디아라는 여인을 통하여 빌립보 교회를 세우지만 그것은 자립선교와는 다른 경우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립 선교는 경제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함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선교적 측면에서도 경제적 자립이 없이는 결코 선교적 가치와 원칙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음으로 루디아의 헌금도 그 원칙과 바울의 선교에 맞도록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이 루디아에게서 도움을 받은 것은 그만큼 바울 자신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너지가 생겨난 것이다. 자유가 있어야 누군가의 헌신도 빛이 난다. 바울의 경제적 자유함이 루디아의 헌신을 빛나게 하는 원천이다. 바울이 루디아를 선교의 동역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자신이 경제적 자유함을 소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선교적 경제와 선교적 기업

 

나는 경제적 자립을 나섬과 몽골학교 사역과 미래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비전으로 삼아왔다. 물론 경제적 자립이란 선교적 경제를 모르고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선교적 경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은 대단히 이중적이다. 교회나 목회자가 경제를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솔직히 우리는 돈에 대하여 얼마나 이중적인가? 나는 오래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한국교회에서 가장 먼저 사회적 기업을 일으켜 만들어 본 사람이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시절, 나는 사회적 기업을 통한 새로운 경제적 자립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얼마나 오해를 받고 욕을 먹었던지 지금도 그때의 힘들었던 그 상황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교회가 무슨 사회적 기업이냐며 손가락질을 하고 교회를 떠난 이들부터, 목사가 사업을 한다며 욕을 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게 경제적 자립의 문제는 너무도 간절한 것이었다.

나는 선교적 기업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줌은 물론이고 그 선교적 기업에서 만들어지는 잉여가치를 선순환하고 재투자하여 더 큰 선교적 기업의 미래를 만드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커피볶'이며 노마드 카페이다. 한편 한국교회 교회 내 카페에 원두유통을 하여 교인들이 선교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캠페인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몇몇 교회에 원두를 보급하고 유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뿐만아니라 커피 생두를 원산지에서 공정무역을 통하여 수입해 보기도 했다. 네팔 선교사를 통하여 히말라야 커피 생두를 공정무역을 통하여 수입해 한국교회에 유통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선교적 경제이며 선교적 기업의 모델이 될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네팔 히말라야 커피 생두를 공정무역을 통하여 수입해 보았던 것이다.

또 하나의 선교적 기업은 사랑나눔 가게라는 이름의 재활용 나섬 가게를 시작했고 그것은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나섬 가게를 선교지에 보급할 생각을 갖고 있다. 먼저는 필리핀 행복학교 사역을 위하여 나섬 가게를 시작하려 한다. 김영옥 선교사가 현재 준비 중이고 조금씩 시도해보고 있다. 앞으로는 재활용 가게를 더욱 확장시켜 선교적 자립 모델을 만드는 꿈을 꾼다.

선교적 경제를 위하여 우리는 선교적 기업을 세워야 한다. 창업만이 그 해결책인 것이다. 그 대안으로 시작한 것이 '솔라 엘'이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모델을 만들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신재생 에너지는 미래 산업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은 곧 선교 자체이기도 하다. 생태 선교이며 생태 신학의 실현이다.

솔라 엘은 탈북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 탈북 청년들에게 창업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북한선교라는 신념으로 솔라 엘을 시작 한 것이다.

에너지 사업은 그 자체로 선교이다. 선교지의 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에너지 주권이 없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빵, 즉 빈곤의 문제를 공통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선교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대안이 신재생 에너지 사업이며 그 중 하나가 바로 햇빛발전소를 통한 대안에너지 사업인 것이다. 나섬은 바로 그 대안에너지 햇빛발전소를 통하여 새로운 선교적 경제를 실현 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모델은 ()한국사회투자의 모델을 선교적으로 벤치마킹하자는 것이다. ()한국사회투자는 사회적 경제를 통하여 경제적 빈곤층에게도 골고루 그 도움이 흘러가도록 하자는 목적으로 세워진 재단법인이다. 사회투자는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어 줌으로 빈곤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새로운 사회적 경제 모델이다. 물론 여기에는 펀드가 필요하다. 기금조성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그 방법으로 시작하려는 것이 바로 '십일조 나눔재단'이다. 한국교회 십일조 나눔 운동은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첫발걸음이다. 십일조 나눔 운동이 확산되고 자리를 잡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교회는 개혁된다. 더 이상의 성장을 위한 경쟁 목회를 지양할 것이며 교회는 서로 공동체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돈의 문제가 개혁의 핵심문제인 것이다.

선교적 경제를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선교지는 물론이고 한국교회의 목회 현장의 숙제이다. 선교적 경제에 대한 이해는 이제 선교와 목회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필수적 조건이다.

 

바울처럼 자유로운 선교사가 되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1년 반을 목회하면서 아굴라와 브루스길라를 만나 텐트를 만드는 동업하면서 목회와 선교를 했다. 선교와 비즈니스가 함께 일어난 것이다. 그 후로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다시 3년을 선교하며 목회할 즈음 아굴라와 브루스길라도 고린도에서 이사를 와 함께 동역을 한다. 평생 선교를 하는 바울에게 사업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비즈니스는 당연한 것이었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이전 바리새인으로서 유대교의 랍비교육을 받았다.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랍비교육을 받았던 바울은 당시 랍비교육에서 필수적으로 배워야 했던 직업교육까지 받았던 것이다. 랍비가 되려는 자들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예수는 목수가 되었고 바울은 텐트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텐트 사업은 그의 선교를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했으며 평생 그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통하여 자유로운 선교사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것이 바울의 힘이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었던 바울의 선교적 철학과 비전의 힘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새로운 선교의 기회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단서라 생각한다. 바울에게서 자유를 배워야 한다. 바울의 선교 철학과 능력을 배워야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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