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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유해근목사와 함께 하는 미션하이웨이-시베리아편(2)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젊어서부터 그렇게나 타고 싶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밤 9시에 출발하는 기차다. 모스크바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는 횡단열차는 우리가 가려는 하바로브스키까지 약 12시간이 걸린다.

밤의 시베리아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밤의 시베리아는 염두에 두지도 않고 대륙을 달리는 기차는 쉬지 않고 길을 달린다. 느낌은 한마디로 멋지다. 생각보다 쾌적한 기차는 말 그대로 내 꿈의 한 장면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다. 잠을 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잠을 자려고 잠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난다. 기차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컴퓨터를 켜고는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지금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컴퓨터 자판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써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자체로 나는 이미 행복하고 감격적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글의 내용은 없다. 시베리아를 달리는 횡단열차 안에서라는 사실만으로 이미 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고 타고 싶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이기 때문에 나는 지금 기차 안에서 컴퓨터를 켰다는 사실만으로 좋다. 누가 이 기분을 알까마는 상관이 없다. 느껴보지 않은 사람에게 굳이 설명할 이유도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느낌과 기분을 서술하고 그 기쁨을 누리면 된다.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음은 행운이다. 나는 기분이 좋다. 다만 이것이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알아 두어야할 것들을 충분히 알아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내 아들과 손자 현이를 데리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에게는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자세히 살펴보라 했다. 아내는 지혜로운 여자이니 믿기는 하지만 걱정이 된다. 혹시 잊어버리지 않기를...

 

조금 전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출발한 횡단열차는 우스리스크 역을 통과했다. 우스리스크는 우리민족 고려인 공동체의 본거지이다. 1860년부터 이주를 시작한 고려인 한민족 공동체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당시 20만 명이 살고 있었다는 고려인의 집단 거주지였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였기에 남은 고려인은 일만 명에 불과했다 한다.

헤이그 밀사 중 한분인 이상설 열사의 슬픈 이야기도 그곳에 있다. 발해의 성터 또한 우스리스크에 있었으니 그곳은 한민족 공동체의 영혼의 뿌리가 있던 곳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그곳으로 이주를 했고 갈 곳 없던 이상설 선생이 마지막으로 찾았던 곳이 그곳이었으며, 고려인의 뿌리가 숨겨진 비밀을 알아챈 스탈린이 강제 이주를 명령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기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스리스크 역에서 잠시 머물던 횡단열차는 다시 황량한 시베리아를 향하여 출발을 한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자판을 기억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쉬지 않고 달리는 기차처럼 샘솟는 그 무언가의 의지가 있었다. 살고 싶다는 의미를 알아낸 사람처럼 내 영혼의 열정이 흥분으로 충만해진다. 시베리아의 분노와 좌절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난의 한이 서린 땅의 아픔을 느껴서일까?

 

현재 연해주에는 3만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탈북자의 수가 3만 명이라는 사실과 비교되는 숫자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출발하기직전 우리는 북한 식당 '금강산'에서 저녁을 먹었다. 생태찌개와 냉면이다. 감자전과 녹두전이 나왔다. 김치맛이 좋다. 북한여종업원들이 노래와 춤을 추며 흥을 돋군다. 그런데 왠지 눈물이 났다. 내가 울보라서 그런 것일까? 나중에 고미선 목사도 눈물이 났다 한다. 흥겹자고 부르는 노래지만 슬픈 현실을 잊게 하지는 못한다. 결국 우리는 그런 감성주의자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눈물의 의미는 감성 이상의 이상한 아픔이다.

 

나는 내일 아침까지 잠을 자지 않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이 기차를 내일 아침에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 섭섭하다. 다음에는 반드시 3일쯤 기차를 타고 싶다. 아마 이르크추크까지 갈 계획을 잡고 와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을 한다. 동해에서 크루즈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항까지, 다시 그 항구에서 곧장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아타고 일쯤 시베리아를 달린 후 바이칼로 들어갈 것이다.

물론 의기투합하고 철학이 맞는 좋은 친구들, 아니면 선교를 논하되 편협하지 않은 열린 친구들과, 크루즈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호로 들어가 며칠쯤 책일 읽고 글을 쓰면서 고요한 바이칼의 호숫가를 거닐면 나는 21세기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될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는 요란스러운 토론도 좋고 멋진 노래도 좋다. 컵라면 한 그릇에도 배가 부르고 겸하여 보드카 한잔이거나 값싼 와인도 탓하지 않겠다. 누가 그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멋스러움과 낭만을 이해할 것인가?

갑자기 아버지 장로님이 살아계셨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창문 밖을 내다본다. 그분이 그립다. 그러나 어머니를 모시고 온 것이 잘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이렇게 나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 있어 감사하다. 어머니는 나와 비슷하게 낭만이 있는 분이다. 나중에는 꼭 영규 내외와 현이를 데리고 와야겠다. 아내는 나처럼 잠을 잘 수 없는가보다. 아내는 참 예쁜 여자다. 오랫동안 이런 여행을 시켜주고 싶다. 아내의 삶에도 행복한 날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고생한 여자도 드물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역을 잠시 머물다 기차는 다시 출발을 한다. 흔들거린다. 이태옥 전도사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피곤한 모양이다. 무척 재미있는 분이다. 섬김의 은사와 분위기를 잘 맞추는 달란트를 가진 분이니 여행의 동행자로 제격이다.

 

이렇게 삼일쯤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라면을 먹으며 책을 읽고 토론을 하다가 시간이 나면 글을 쓰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이런 미션 하이웨이는 최고의 힐링 여행이다.

더 많이 자주 나와야 한다. 이런 여행을 개척하고 많은 이들에게 동행을 권해야 한다.

나중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지나 터키이스탄불 호잣트 집까지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혼자 웃는다. 그렇게 살고 싶었던 삶이었으니 나는 반드시 그날을 살아 낼 것이리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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