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근목사와 함께 하는 미션하이웨이-시베리아편(4) > 노마드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노마드 이야기

   
유해근목사와 함께 하는 미션하이웨이-시베리아편(4)

바이칼에서의 하루

 

61일 아침, 일행 중 몇몇 분들이 새벽 바이칼의 해돋이를 보았다고 흥분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눈도 보이지 않는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해 돋는 모습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새벽 4시쯤 아내는 화장실로 가는 나를 따라 나오다 창문의 커텐 뒤에서 벌겋게 올라오는 새벽 알혼섬의 해돋이를 보고는 아름답다며 감탄하였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돌아온 나는 침대위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러냐며 시큰둥하게 답하는 것이 전부다.

조금 있다가 누군가 바쁘게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통나무집이라 위층에서부터 내려오는 소리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인가 싶더니 아니다. 여러 명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바이칼의 그 아름다운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인 듯하다.

윤 권사님의 해돋이 사진이 제대로 찍혔다며 아내가 감탄을 한다. 나는 마음으로 해돋는 바이칼을 보았다.

2000년도에 나는 아내와 두 아들 영규 영길이를 데리고 고비사막을 간 적이 있다. 그 당시만해도 나는 시력이 조금 남아 있었던 터라 지금도 생생하게 고비의 일출과 일몰을 기억한다. 고비사막에서의 일출과 일몰은 장관이었다. 멀리서 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인생의 황혼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침 일찍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느꼈던 거대한 창조의 위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번 바이칼의 일출도 그랬을 거다. 바이칼 호수와 몽골의 홉스굴 호수는 상류와 하류로 닿아 있으니 바이칼의 일출이나 홉스굴의 일출은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바이칼의 일출을 홉스굴과 같다고 주장하면 바이칼이 기분나빠할 것도 같은 것이 그 깊이와 넓이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칼은 바이칼, 홉스굴은 홉스굴이다.

여행자 중 운이 좋은 사람은 해를 본다. 잠을 자도 해 돋는 시간에는 꼭 잠을 깨서 해 돋는 일출을 본다. 운이 없는 사람은 밤새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려도 아침 날씨가 흐리면 보고싶어도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해는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푸르공 지프차를 타고 바이칼을 트래킹하기로 했다. 해돋이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던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므로 비옷을 입고 푸르공에 올랐다. 우리는 오후 4시까지 바이칼의 알혼섬 곳곳을 트래킹하기로 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던가 싶더니 조금은 잠잠해진다. 비포장 도로였지만 비가 오니 먼지는 없다. 이렇게 살짝 비가 내리면 더 좋다. 과연 어떤 날씨가 좋은 것인가를 묻는다면 모든 날씨가 좋은 것이라고 설교한 적이 있었다. 맑은 날에서부터 흐려 비가 내리는 날씨까지 하늘에서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모든 것이 은총이다.

얼마가지 않아 모두가 탄성 연발이다.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꽃들의 동산이 이곳에 있었다니! 진달래가 가득한 동산이다. 할미꽃이랑 이름도 모르는 야생화도 가득하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달리던 차를 세우고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 하나님 지으신 위대한 창조를 찬양한다. 알혼섬에 찬양이 울려 퍼진다.

천지창조의 그 원형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살짝 가랑비가 내리고 안개는 보일까 말까 하는 정도로 덮혀 있으며 온통 야생의 향기로 가득한 알혼섬의 이 모습은 글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다.

아내는 또한 야생화의 여인답게 찬찬히 야생화의 탐색에 몰입한다. 그 모습을 누군가 사진에 담았다. 아름다운 사모님이라며 칭찬이다. 아내는 부끄러워한다. 나는 기분이 좋다. 야생화와 아내는 닮은꼴이라서 좋고 그런 아내를 사랑하고 칭찬해주니 그런대로 행복하다. 알혼섬의 야생화 단지는 곳곳에 있었다. 솔제니친의 포로기를 낳았던 오래전 시베리아 알혼섬의 포로수용소를 보았다. 한번 들어오면 죽는 날까지 탈출할 수 없었던 그 지독히도 고통스러웠을 수용소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들의 일정에 불과한 역사의 흔적이다. 역사는 흐르고 반복되지만 이런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밖에는 바람이 불지만 우리는 아늑한 쉼터에서 점심을 먹는다. 간단하게 준비한 도시락이지만 모두가 웃으며 감사하게 먹는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목에서 우리 일행은 차에서 내려 걷기로 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이르쿠츠크의 호텔에서 쓰고 있지만 몇 시간 전의 알혼섬, 그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속 길을 잊을 수 없다. 냄새가 달았다. 우권사님은 우리는 지금 꽃 속을 달린다고 했고 겹겹이 끼어입은 옷을 보니 시베리아 노숙자 같다고도 했다. 알혼섬의 숲길은 낙엽이 쌓여 만들어진 양탄자 같았고 그 느낌은 에덴의 동산을 거니는 아담과 하와 같았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웃음소리가 충만하여 서로에게 얼마나 좋은가를 연발하는 감격의 순간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그 신비함의 충만이 전부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걷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기도했다.

걷다가 꽃동산이 보이면 아내는 사진을 찍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다. 육체의 눈으로 보이는 것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진리에 가까울까? 보는 것과 볼 수 없음이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진리를 본다는 것이 과연 맞는 표현일까를 생각했다. 나는 볼 수 없지만 그 볼 수 없음 대신에 더 큰 느낌으로 아름다움을 본다. 마음으로 상상하고 머리로 그림을 그리며 바이칼의 알혼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기억할 알혼과 눈으로 보고 떠나는 이들의 기억 중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울까? 아니 누구의 기억이 더 오래갈 수 있을까?

나는 바이칼을 볼 수 없지만 내 가슴에는 아주 오랫동안 바이칼을 추억할 것이다.

알혼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고목사가 사고를 친 것이다. 우리 일행은 십여분 정도를 걷다가 뒤에서 따라오는 지프차에 다시 올라탔다. 우리 차에는 김장로님과 정집사님이 타고 있었다. 우리 모두 차에 오르자 이미 차에 타고 있던 두 분의 행동이 이상했다. 혹시 우리 중 여권을 잊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냐며 생뚱맞은 물음을 던진다.

그러더니 놀라운 일이라며 여권과 지갑이 든 작은 가방 하나를 슬며시 보여주신다. 알고보니 우리 일행이 차에서 내려 산길로 트래킹을 떠난 이후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던 지프차 기사가 길섶에 떨어진 작은 물건 하나를 발견하고는 차를 세워 집어 온 것이다. 그 안에는 고목사의 여권을 비롯하여 지갑과 중요한 몇가지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큰일날뻔한 사건이다. 만약 그 기사가 그 작은 가방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발견하고도 우리에게 넘겨주지 않았다면 고목사는 지금 알혼섬에서 선교사로 인생을 마감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바이칼을 떠나기 직전 자신이 여권을 잃어버린 것을 깨달은 고목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우리는 고목사를 놀리는 장난을 치며 얼마나 웃었던지... 돌아오는 날 고목사는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크게 미안해하며 우리일행 모두에게 초콜렛을 사서 나누어 주기도 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필리핀 행복학교 한국어 교실에서 쓰고 있는데 어젯밤 우리 몽골학교 교사 수련회를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바이칼에서 다 쓰지 못한 글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이곳에 컴퓨터를 켜고는 그 때를 생각한다.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알혼섬의 아침 공기와 향기를 반추한다. 시베리아에서 이곳 필리핀 아누나스 행복학교까지 그 진한 여운이 떠나지 않고 따라왔는가 보다.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며 벅찬 감격으로 돌아보았던 시베리아였던가?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 장로님이 계셨다면 참 좋았을 시베리아 여행이었다. 다시 그곳으로 갈 것이다. 이번에는 더 짜임새 있는 스케줄과 마음에 꼭 동행하고픈 이들을 데리고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의 알혼섬을 가고 싶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환상의 섬 알혼의 야생화 꽃밭에서 그 감격을 다시 한 번 누려볼 것이다. 너무 환상적이며 몽환적이었던 그날 비가 내리고 안개가 살짝 덮힌 알혼의 신비를 더 깊이 느껴볼 것이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되는 태고의 향기와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는 바이칼을 기억하며 나는 다시 그날을 준비할 것이다. 아들과 손자와 사랑하는 이들을 데리고 알혼섬의 그 깊은 산길을 다시 걷고 싶다.

 

 



hi
   


[04982]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로 1(광장동 401-17)
나섬공동체 대표전화 : 02-458-2981 사단법인 나섬공동체 대표자 유해근
COPYRIGHT © NASOM COMMUNIT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