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없다 1. 아브라함처럼 가출하라(1)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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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은퇴는 없다 1. 아브라함처럼 가출하라(1)

그러니까 우리는 오래 산다는 거지요

 

필자는 베이비부머 세대다. 1962년생이니 직장을 다니는 내 친구들은 직장을 떠나야하는 나이다. 실제로 가까운 친구의 이야기에 의하면 지금 자신의 대학 동기들는 한결같이 은퇴를 해서 등산을 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읽는 일로 소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58년생부터 1963년생까지를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라 하니 지금 이 베이비부머 세대가 한창 은퇴하는 시기다. 뿐만아니라 이미 기대수명은 물론이고 평균수명이 80살을 넘어 100세에 이르니 이미 우리나라는 고령화 시대가 되었다. 우리 아버지 장로님은 80세에 소천하셨는데 장례를 치르는 가운데 문상을 하러 오신 분들이 한결같이 아버지 장로님의 연세가 80세라는 말을 듣고는 조금 더 사셔도 되셨는데... 하면서 아쉬운 듯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80세는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우리 모두는 부지불식간에 갖고 있다는 말이다. 간혹 교인들의 장례를 치르다보면 요즘 돌아가시는 분들의 연세가 대부분 90세에 가깝거나 90세가 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분명히 우리는 초고령 사회에 살고 있다.

구글(Google)이라는 세계적인 기업은 미래 인간의 기대 수명을 170세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하며 새로운 미래 4차 산업에 투자하고 있고, 재일교포 기업인인 손정의 소프트 뱅크회장은 앞으로 인간의 수명이 200세를 넘을 것이라면서 최근 영국의 ARM이라는 반도체 회사에 우리 돈 34조원이 넘는 엄청난 자금을 투자했다 한다. 얼마 전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2017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평균 130살까지 살 것이라 하니 우리는 지금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고려대학교 박유선 교수의 논문 ‘100세 도달 가능성이라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70세의 노인들 중 약 25%100세까지 살 것이며, 현재 1958년생들 중 100세까지 살 확률은 50%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앞으로 최소한 100세까지 사는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노령화되고 있는 국가이다. 통계청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을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가 넘으면 고령사회라 하는데 우리는 2018년이면 14%를 넘는다고 한다. 이런 추세로 2026년이 되면 전체 인구 중 노령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는 물론이고 교회의 고령화 문제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필자는 어느 대형 교회의 평생교육원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노인들이 천여 명 되는 것을 보면서 교회가 얼마나 빠르게 고령화 되고 있는지를 실감하였다. 현재 한국 교회의 노령 인구는 전체 교인의 21%를 넘는다고 한다. 이는 한국교회의 고령화가 우리 사회의 고령화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고령화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추세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노인들만 남는 교회가 될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출산 초고령 사회로의 변화는 곧 교회의 현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당장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커다란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사님,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살아요!

 

필자는 우리 공동체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차규철 집사님을 소개하고자 한다. 집사님은 나섬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의료봉사를 하신 의사선생님이다. 나이가 거의 80세에 이르는 노 의사지만 최근까지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료봉사로 사명을 다하시는 귀한 어른이시다. 집사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방문할 때마다 가장 안타까워하시는 것은 내 눈이 안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집사님은 진료를 하러 오시면 내게 현대의학에 대하여 아시는 바를 귀띔해 주시곤 한다. 언젠가는 내게 최근의 의학정보를 알려주시며 줄기세포를 비롯하여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엄청난 의학정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살아요!'라고 하신 기억이 난다.

정말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런 날이 곧 올 것도 같다. 지금의 추세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과학혁명의 속도를 보면 빠른 시간 내에 상상할 수 없는 의학적 발전이 있을 것이다.

600만불의 사나이라는 오래된 드라마가 현실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소위 사이보그, 즉 사람이 로봇이 되는 것이다. 필자처럼 눈이 안보이는 사람에게는 인공의 눈이 만들어져 대체하게 될 것이다.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나에게 그날이 올지도 모른다.

머리카락도 다시 자라나게 하는 약품이 개발되어 대머리는 사라지고 내 눈은 사이보그의 눈으로 갈아 끼워져 멀리까지 내다보는 천리안을 갖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내가 다시 젊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나를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나타나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그것은 차집사님과 대화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이다. 집사님은 10년 후면 그런 날이 올 것이라면서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고 하신다. 참 고마운 말씀이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앞으로 내게도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상상으로 혼자 웃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

'재수가 없으면 120살까지 삽니다.' 하시던 차집사님은 자신의 미래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며 웃으셨다. 80세가 다되신 노 의사의 희망이 과연 허무맹랑한 헛된 꿈일까?

 

얼마 전 읽었던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수필집을 보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가 언제였느냐는 물음에 70대였다고 고백한다. 백세가 다되신 어른의 말씀이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김 교수님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가 70대였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여전히 강건함을 자랑하셨다. 그분은 강연도 하고 원고도 쓰면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신다고 한다. 아마 100살을 넘기시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노 교수께서 70대가 가장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시니 우리는 지금 다시 한 번 자신의 나이를 생각해 볼일이다. 과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식으로 나에게 대입하여 보니 필자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함이 분명하다. 내 나이도 적지는 않지만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사뭇 어린애 정도로 미숙하니 나는 여전히 어리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래 산다는 말이다

그러면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일 수도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오래 사는 것은 모든 인간의 염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준비된 노년만이 축복이며 은혜임은 당연하다. 준비되고 축복된 노년을 살아야 장수가 축복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오래 사는 것이 결코 감사한 일만은 아니다. 가장 행복하고 의미있게 늙어가고 장수의 축복을 누리는 삶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그 답은 성서에 있다. 성서의 인물들에게서 그 길을 찾아가자.

 

 

아브라함처럼 가출하라

창세기 12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이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여호와말씀을 따라갔고 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1~4)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그의 나이가 75세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서기자는 왜 굳이 아브라함의 나이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았을까? 성서에서 나이를 기록할 때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도 가진다. 특히 아브라함의 이름이 나오는 창세기 12장을 우리는 신학적으로 역사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 이전을 원역사라고 하며 아브라함으로부터 실체적 역사로서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으로부터가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그의 나이가 75세였다. 우리와 동일한 나이일 것이다. 그의 나이를 살펴보면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을 알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또 어떤가? 아브라함보다 10살이 어리니 그녀의 나이는 65세다. 그 부부의 순종과 결단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필자는 지금도 한 집에서 19년을 살고 있다. 이사 한 번 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사한다는 것에 대하여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면 자꾸 이사를 해서 돈을 불려야 한다는데 그런 식으로 재테크를 할 능력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실제로 가장 힘든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다. 내가 오랫동안 살고 머물렀던 곳에 대한 익숙함이 내 마음에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이끌어 주었던 공간을 떠나는 결단을 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생일대의 결단을 하지 않고 어떻게 오랫동안 그것도 75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곳을 떠날 수 있겠는가? 자기 부모의 고향 친척집이 있는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람이 어떻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떠날 수 있었을까? 그런 결단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필자는 일찍이 이주민 목회를 시작했다. 내가 이주민 목회를 시작하게 된 배경 중 하나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왜 이주민목회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서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과 그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면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위의 창세기 12장의 본문에서 가장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 다섯 번이 언급되는데 성서에서 복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이기도하다. 복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많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복 받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본문에서 복 받는 사람의 조건이 두 가지로 나온다. 첫 번째 조건은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아브라함이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1절과 2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지시할 곳으로 떠나는 것이 복의 근원이 되는 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번째의 조건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떠나는 아브라함과 동시에 떠난 아브라함을 향하여 축복하는 것이 복 받는 조건이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땅으로 떠나는 것과 그렇게 순종하고 떠나는 아브라함 같은 나그네를 축복하는 것이 인생에서 복 받는 두 가지 조건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필자가 이주민 목회를 하면서 가장 확실하고 강하게 주장하는 부분이다. 즉 아브라함처럼 유목민 나그네로 떠나는 결단이 복 받는 첫 번째 조건이며, 두 번째 조건은 아브라함과 같은 이주민 나그네를 극진하게 영접하고 섬기는 것이 복 받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진리를 알면서 나는 이주민 목회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된 인생으로 살아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다시 고백할 수 있다. 혹시 우리 하나님께서 내게 다시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어김없이 나섬즉 나그네를 섬기는 이주민 목회자의 삶을 살 것이라고 고백한다. 단언컨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25년을 넘도록 쉼 없이 달려온 나섬의 목회에서 발견한 진리이며 그러므로 나는 가장 행복하고 감사할 것이 충만한 목회자라는 자신감에서부터 나오는 진정한 고백이다. 성서에 기록된 말씀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내 고백은 진정 신앙의 고백이다.

 

아브라함처럼 집을 나오는 사람 즉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하시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사람만이 복 받을 조건을 갖춘 사람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에 그의 나이가 75세라는 것이다. 그것을 성서기자는 분명하게 언급해 놓았다. 왜 그의 나이를 언급해 놓았을까? 그것도 75세라는 나이는 적지 않은 나이다. 그렇다! 그 의도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복 받을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결단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의 시작은 나이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브라함처럼 나이가 많아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복 받는 사람의 원조가 될 수 있다. 그 첫째 조건이 바로 가출하라는 것이다. 집을 나가라는 것이다. 그의 부모 형제 친척 집이 있는 곳에서 떠나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나이쯤 되면 사람들은 같은 동네에서조차 이사하기를 꺼리게 된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40년쯤 된 오래된 아파트다. 그러니 아파트 곳곳에 문제가 생기고 살아가는데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그렇게 오래된 아파트라면 재개발하자는 말이 나올만도 한데 우리 아파트는 재개발이 어렵다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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