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없다 2. 모세처럼 아직 끝나지 않았다(1)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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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은퇴는 없다 2. 모세처럼 아직 끝나지 않았다(1)

핑계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다. 그보다 영향력 있었던 지도자는 이스라엘 역사상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위대한 지도자였던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권력의 의지를 갖고 지도자가 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하기 싫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끌고 들어가 지도자가 되게 하신 경우다. 자발적으로 리더가 된 사람이 아니라 타의에 의하여 노년에 지도자로 올리어진 사람이다. 그는 애급의 바로를 이을 권력자중 한 사람이었다. 야사에 의하면 그는 적어도 권력 서열 5위 안에 들었던 매우 높은 계급의 촉망받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한 번에 운명이 갈라지는 것이다. 자신의 뿌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의 고민이 특별해서였을까? 그는 애급의 종으로 살던 유대인들의 편에 들다가 우연히 사고를 일으켜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애급에서 도망쳐 미디안 광야의 족장 이드로의 집에서 목동의 신세로 전락한 그는 그곳에서 십보라라는 이드로의 딸을 아내로 맞아 이주민의 삶을 산다. 사막의 베드윈족 이었던 이드로의 집에서 미래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 그저 평범한 양치기 목자로 살아가는 그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애급에서 도망쳐 나올 때의 나이가 40세였으니 어느새 그의 나이는 80세가 된 것이다. 40세의 젊은이가 80세의 노인이 된 어느 날 정말로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손님은 모세에게 놀라운 제안을 한다. 제안이라기보다는 반강제적으로 모세를 부르시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말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애급으로 떠나라는 것이다. 젊은이도 아닌 나이 80세의 노인에게 이 제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그는 당신이 누구이시기에 이런 말씀을 하시냐며 반문한다. 그들 사이에 주고받은 물음과 답변은 오늘날 신학의 주제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간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출애굽기 41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모세의 반응이 온통 핑계뿐임을 알 수 있다.

 

10.모세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기쁨이 있을 것이라
15.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애굽기 4:10~16)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핑계로 일관하는 모세의 모습은 사실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렇게 답하고 싶을 것이니 말이다. 모세의 첫 번째 핑계는 나이다. 자신의 나이가 80세라는 것을 은근히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두 번째의 핑계는 건강이다. 모세는 말을 못하고 입이 뻣뻣해지는 장애가 있다며 손사래를 친다. 정치를 하려면 말을 잘해야 하는데 자신은 말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면 이 정도의 핑계로 대부분 벗어날 수도 있다. 건강의 문제를 말하면 그건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은 이해하고 포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대안까지 준비해 놓으신다. 모세의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정치를 하라며 대변인까지 마련해 놓으신 것이다.

본문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세 번째의 핑계거리는 이미 자신의 백성들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하였으니 이미 지도자가 되기에는 늦었다는 핑계도 하였다. 나이가 젊었을 때 다시 말하면 애급의 궁전 안에서 권력을 갖고 있었을 그 잘나가던 때에 부르실 것이지 이미 나이는 80세요, 자신의 백성들에게는 배신당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자신을 부르시는 것에 대하여 모세는 마지막 핑계거리도 가지고 있었으리라. 차라리 젊은 시절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었을 때에 부르실 것이지 왜 이 늦은 황혼의 때에 자신을 부르시냐며 짜증도 내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도 신의를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권력은 의지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지도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모세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단절된 잊혀진 사람이다. 그런 모세에게 다시 앞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여전히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아무리 핑계를 대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인간이 가진 무기가 핑계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처럼 인간은 핑계하는 존재다. 핑계는 인간의 실존이다. 핑계하는 인간이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얼마나 핑계를 대며 살아가는가? 나이를 핑계 삼아 늙은척하고, 건강을 핑계 삼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돈도 권력도 없다며 힘없는 핑계로 자신의 삶을 유기한다. 할 수 있는 일들도 우리는 핑계거리만 있으면 하지 않겠다고 직무유기의 불순종을 당연시한다. 모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핑계가 통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다. 오히려 핑계를 대신할 더 큰 부르심이 있었다.

오래전 우연히 읽었던 호서대 강석규 이사장의 고백 한편이 내 가슴에서 크게 울렸던 적이 있다. 그는 과연 어떤 고백을 하는가? 다음은 20088월 당시 강석규 이사장의 동아일보 칼럼 내용이다.

 

어느 95세 노인의 고백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실력을 인정받고 존경을 받았지요.65세 때 당당히 은퇴할 수 있었고 그런 나는 30년 후인 95살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그런 삶을 무려 30년 이상 살았지요.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합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할 105번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강 이사장은 지난 2015103세에 소천을 했다. 그가 말하던 105세까지는 못살았지만 그는 장수의 축복을 누리고 하나님 나라에 갔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죽는 날까지 주어진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은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믿는 자들에게 은퇴는 없다. 은퇴라는 말이 성서에 단한번이라도 언급된 적이 있었는가? 없다. 단 한 번도 은퇴하라는 말은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은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물론 사회에서의 은퇴는 있을 수 있다.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은퇴의 시간은 만들어질 수 있다. 그것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다음세대가 또 한 세대를 이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길목에서의 은퇴라면 언제든지 그 정도의 은퇴는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은퇴는 없다. 그 어떤 핑계로도 은퇴를 합리화할 수 없다. 은퇴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자들의 책임이며 주어진 사명이다.

 

 

120살까지 살았던 모세가 부럽다

신명기 345~7절에는 모세의 마지막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그의 시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에녹처럼 하늘나라로 그대로 들림 받은 것이었을까? 물론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모세의 시신이 무덤이 되고 그 무덤이 우상이 되는 것을 막으시려는 고도의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우상이 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반대 의지가 이것이다. 그러니 모세가 죽었어도 그의 시신은 없다. 찾지 못한 것인지 하나님 나라로 들림 받은 것인지는 몰라도 모세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싶으셨던 거다.

그러니 그의 죽음은 영원한 미스터리다. 모두가 의아한 모세의 죽음과 아니 찾을 수 없는 모세의 존재는 그들의 마음속에 영원하다. 우상이 되지 않는 대신 모세라는 존재는 이스라엘 민족의 유전자 속에 영원히 기억될 영웅이다. 이보다 존귀한 죽음이 있었던가? 어떤 죽음도 모세의 죽음보다 위대할 수도 신비로울 수도 없다. 그는 죽었지만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잘 산다는 것은 또 잘 죽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이 존귀하지 않으면 평생의 그 어떤 위대한 삶도 오래 기억될 수 없다.

모세의 삶과 죽음은 그런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를 던진다.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또 잘 죽는 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생각해 볼 일이다.

40년은 바로의 궁정에서, 다시 40년은 미디안 광야의 목동으로, 그리고 마지막 40년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살았던 사람이 모세다. 그의 삶은 40년 주기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한 인간의 삶이 이토록 반전되고 다시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는 변화무쌍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 죽음도 너무나 신비롭고 영원할 수 있는 멋진 최후의 선택은 그 무슨 축복이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모세가 부럽다. 모세처럼 드라마틱하고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는 그 쉼 없는 존재의 탈바꿈이 부럽다.

 

 

모세처럼 살았던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김대중 대통령만큼 극단의 평가를 받는 사람도 드물다. 세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하고 네 번째 만에 그것도 나이가 73세에야 비로소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 인생의 곡절을 한마디 말로 정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924년에 태어나 2009년까지 85년을 한결같이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많은 고초와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았던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만든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나이가 73세쯤 되면 평소의 건강은 물론이고 일상의 삶도 스스로 챙기기 어려운 나이다. 기억력도 감퇴하고 모든 것에 자신감도 상실할 나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것일까? 오히려 1997년부터 불어 닥친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누구보다 지혜롭고 탁월하게 극복한 그의 능력은 그의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김대중 대통령이 있다면 이스라엘에는 시몬 페레츠라는 대통령이 있다.

그는 1923년에 태어나 20169월에 향년 93세로 뇌졸중으로 별세했다. 19941014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두 차례 이스라엘 수상과 대통령을 지냈다. 그는 죽기 전까지도 왕성하게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로 살았던 사람이다. 인간이 이렇게도 오랫동안 한 국가의 지도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이스라엘의 독립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헌신한 사람이다.

나는 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91세 모델 박양자 할머니다. 1927년생 국내 최고령 모델이라고 한다. 할머니의 음성은 아직도 젊게 들렸으며 적어도 10년은 더 모델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늙음은 핑계의 조건이 아니다. 늙음으로 생의 유효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늙음은 늙음이다. 늙었다는 것이 곧 죽음은 아니다. 늙었다는 것일 뿐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늙음도 여전히 살아있음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늙음도 사명이 있는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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