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없다 3. 평생 은퇴하지 않은 사람 여호수아처럼 > 노마드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노마드 이야기

   
은퇴는 없다 3. 평생 은퇴하지 않은 사람 여호수아처럼

 여호수아의 등장

처음부터 죽는 날까지 한결같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일관성 있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일관성 있는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시는가보다. 여호수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성서에 등장하는 처음부터 죽는 날까지 여호수아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았음으로 높고 존귀하게 쓰임 받았던 사람이다.

모세나 아브라함의 경우 중간 중간 흐트러지거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삶을 살기도 하였지만 여호수아는 달랐다. 그는 애급에서 광야로 다시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성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출애굽기 179절과 13, 애급에서 나온 히브리 백성들이 아말렉과 처음 전투를 했던 상황에서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병사들을 모아 전투에 임하라 명령한다.

 

9.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1.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출애굽기 179~13)

 

여호수아가 처음 성서에 등장하는 아말렉과의 전쟁 당시 그의 나이는 아마도 40살쯤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나오지만 그는 110세에 죽었다. 그러니까 광야 생활 사십년과 가나안 입성, 정복 전쟁의 시기까지 고려해보면 대충 그는 40세 이전부터 쓰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 147절에서 여호수아는 '내 나이 40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음으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라고 했다.

그의 나이 40세가 되지 않은 젊은 시절부터 110세 죽는 날까지 이토록 일관되게 쓰임받은 인물은 성서에 없다. 오직 여호수아만이 그런 삶을 살았으니 그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다.

 

성서에서 두 번째의 등장은 모세가 십계명 등 율법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오를 때에 모세와 동행하는 모습이다.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13.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모세가 산에 오르매 (출애굽기 2412~15)

 

모세가 회막에서 하나님과 만날 때 항상 회막을 지키며 모세의 수종을 든 이도 바로 여호수아였다.

8.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338~11)

 

이어 여호수아가 가장 확실하게 역사에 등장하는 장면은 바로 가데스 바네아의 열두 정탐꾼 이야기에서다. 여호수아는 가데스 바네아의 정탐꾼 중 한명이었으며 이때 본래 이름 호세아를 모세가 여호수아로 개명해주었다.

 

16.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민수기 1316)

 

6.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민수기 146~10)

 

출애굽 이후 40년이 지난 다음 첫 번째 인구 조사 때의 생존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갈렙과 여호수아만 생존하였을 때, 두 번째 인구조사를 실시하는 장면이 민수기 26장에 나온다.

 

65.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민수기 2665)

 

다음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지명하시는 장면이다.

 

1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21.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22.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23.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민수기 2718~23)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분배 책임자로 제사장 엘르아살과 함께 임명되기도 한다.

 

16.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너희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의 이름은 이러하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니라 (민수기 3416~17)

 

신명기 말씀에는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가 안수 받는 장면이 나온다.

 

9.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신명기 349)

 

드디어 사사기에는 여호수아의 임종장면이 나온다.

 

7.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27~10)

 

내가 여호수아에 대한 성서의 기록을 재차 언급한 것은, 여호수아라는 사람이 죽는 날까지 얼마나 한결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는지를 강조하고 싶어서다. 다시 말하여 여호수아는 은퇴가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은퇴가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성공한 삶이다.

나는 성서의 인물 중 가장 복 있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 여호수아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지만 그는 갈렙과 함께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으며 모세이후 이스라엘의 두 번째 지도자로서 가나안 입성과 정복 때까지 쓰임 받은 인물이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중요한 순간마다 그의 이름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출애굽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 이후의 지도자로 쓰임받기까지 여호수아는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죽는 날이 은퇴한 날이 된 사람이다. 여호수아는 110살까지 살면서 하나님 곁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사람이다. 여호수아가 부럽다. 나도 여호수아처럼 살고 싶다. 그것이 진정 축복된 삶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이미 여호수아처럼 살았거나 살고 있는 이들이 있어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여호수아처럼 은퇴하지 않은 사람

 

장신대 이광순 교수

이광순 교수님은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멘토다. 장신대에서 선교학 교수로 은퇴하고 곧이어 주안선교대학원대학의 총장으로 4년을 봉직했으며, 다시 선교의 현장으로 돌아오신 분이다.

내가 이광순 총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건강이 매우 심각할 정도로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장수술은 물론이고 암과 뇌수술까지, 온통 걸어다니는 병원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건강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전혀 머뭇거림 없이 전세계를 누비며 선교적 삶을 사는 모습은 언제나 나에게 감동을 준다. 때때로 힘에 겨워하시는 모습이 보일 때면 조금은 안타깝고 역시 나이는 숨길 수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조금 쉬시라 하면 무슨 소리냐며 호탕하게 웃고 넘겨 버리는 그 모습은 마치 죽는 날까지 은퇴하지 않았던 여호수아를 생각나게 한다.

 

온누리교회 오성연 장로

오성연 장로님은 우리 공동체가 만든 뉴라이프 선교회의 단골 강사다. 내가 은퇴자 선교회를 시작할 때에 오장로님과 가장 먼저 의논을 했으며 특히 뉴라이프 비전스쿨을 시작하면서 장로님의 힘과 에너지를 확인하고는 정말 감동을 받았던 분이다. 장로님이 섬기던 교회와 부총장으로 계시던 한동대학교에서는 은퇴하셨지만, 전세계에 다니며 학교를 만드는 사역을 이끌어 가시는 모습은 죽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라는 내 평소 지론을 현실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릎이 온전치 못하여 언제나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면서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장로님의 탁월한 안목과 통찰력은 참으로 독보적이다. 'One class One school'이라는 학교 세우기 사역은 선교현장에서 무척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장로님은 지금도 우리 공동체와 은퇴자 선교회의 중요한 멘토시다.

 

내 아버지 유정준 장로

아버지 유정준 장로님은 2014년 소천 하셨다. 가까스로 80세를 채우셨으니 인생 100세 시대라는 요즘으로 치면 그리 오래 사신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일찍이 고아처럼 사신 분이다. 배우신 것도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으므로 아버지는 평생 농사와 노동으로 사셨다. 나는 아버지가 노동자요 농사꾼이라는 사실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물론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힘들게 사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내게 당신은 평생 단 한 번도 남의 회사에 다닌 적이 없다 말씀하셨다. 실제로 아버지는 땅에서 농사를 짓고 노동을 하시면서 평생을 사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그렇게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평생직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땅이었지만 그 땅에서 닭과 돼지를 키우고 농사를 짓고 그렇게 평생 노동자로 사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일하시고 부지런하게 사시는 모습이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 장로님이 그립다. 내가 외국인노동자를 섬기는 목회를 한다고 할 때에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땅에서 나오는 채소며 먹거리를 가져다주시는 일이라시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무언가 심고 거두면 그것을 나섬에 가져다주시곤 하였다. 아버지는 은퇴를 하신 적이 없다. 물론 누군가에게 은퇴를 종용받으신 적도 없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현역으로 사신 분이다. 노동자요 농사꾼만이 가진 특권이었을까? 아버지는 여호수아처럼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고 은퇴를 모르고 사셨던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멘토이며 친구였다.

 

마지막까지 남은 두 사람

모세와 함께 마지막까지 광야의 생활을 마감하고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까지 남은 사람은 갈렙과 여호수아다. 그들만이 살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얻은 것은 바로 가데스 바네아의 정탐꾼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이 도우신다면 얼마든지 가나안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하였으므로 그 두 사람만이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다고 성서는 증언한다.

젊은 시절부터 죽는 날까지 단 한 번도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섭리를 붙잡고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그 고통스러운 광야의 세월을 어떻게 신앙의 힘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모두가 회의하고 의심하며 때로 불평하고 원망하였던 그 수많은 날들을 어떻게 그 두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처럼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보이지 않는 미래와 하나님의 섭리보다 보이는 현실에 더 빠르게 반응한다. 현실적으로 마주한 문제가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와 언제나 충돌하고 갈등하는 것이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 해도 인간사가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다. 때때로 고난이 있고 예기치 못한 수많은 문제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결같이 신앙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을까?

광야에 들어선 이들에게 나타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로부터 어디로 갈 것인지 방향을 정해야하는 일까지 온통 문제투성이의 상황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며 모세에게 항의하고 원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가데스 바네아의 정탐꾼 이야기 또한 그들의 문제와 원망이 절정에 달했으므로 보게 되는 장면이다. 가나안 정복은 다름아닌 비전에 대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목적이 무엇인가를 놓고 그들은 의심하고 갈등했던 것이다. 열 명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포기하자 하고 갈렙과 여호수아는 할 수 있다고 답하는 장면에서 나는 이 순간이 결국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그 두 사람은 최후의 살아남는 자의 은총을 받았다. 목적지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은총이다. 모세도 들어가지 못하는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들어갈 수 있었다니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단 한 번도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것이 은총 받는 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내가 성서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여호수아다. 한 번도 하나님과의 동행을 불평하거나 거스른 적이 없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과 섭리만을 좇아 살았던 가장 모범적인 인생이 여호수아였다. 그는 죽는 날까지 가장 복 받은 사람이다. 평생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고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래서 자신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모시겠다고 고백했다.

여호수아 2415절에서 그는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하니'라 했다.

자신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하는 여호수아의 그 담대한 고백



hi
   


[04982]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로 1(광장동 401-17)
나섬공동체 대표전화 : 02-458-2981 사단법인 나섬공동체 대표자 유해근
COPYRIGHT © NASOM COMMUNIT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