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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굿모닝몽골2 몽골자매와의 첫 만남(2)

19939, 당시 갈릴리 교회의 인명진 목사님과 희년선교회의 대표이던 이만열 장로님을 공동대표로 하여 한국교회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를 창립하였고 내가 초대 총무가 되어 본격적인 이주민 사역을 시작하였다. 여기서 꼭 한마디 언급하고 싶다. 바로 인명진 목사님과의 만남이다.

나는 지금 그분과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뿐만아니라 그분을 만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이야 이제 크신 분이 되었으니 나 같은 사람하고는 상대도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분과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리고 그분도 그 일들을 잊고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그분이 그 일들을 잊어버렸다면 그분은 진짜 크신 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자세한 일들을 여기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그분은 일종의 애증관계에 있다는 말만은 하고 싶다. 나는 그분만큼 뛰어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실제로 나는 그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이 오늘 나를 있게 한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내 건강도 자존감도 젊은 시절의 꿈도 잃었다. 그래서 그분을 생각하면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그분이야 가슴이 아플 까닭이 없겠지만 말이다.

후일 내가 그분만큼 나이를 먹고 삶의 궤적을 말하고 싶을 때에는 분명히 그때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한국교회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는 우리나라 이주민 선교와 시민운동 차원의 최초의 지원단체가 되었다. 단언하건대 그 이전에는 우리나라와 한국교회에 그 어떤 조직도 없었다. 이것이 최초의 연대조직이었고 그 조직을 이용해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에 대하여 이주민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게 되었으니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이주민 사역의 최초다.

특히 19941월 당시 경실련 강당을 점거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는 한 달 간의 농성이 있었으니 그것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주민 단체 농성이 되었다. 나는 당시 협의회의 총무로 농성을 주도하고 경실련 강당에서 살아야 했다. 그 연유로 만난 분이 당시 경실련 사무총장이던 서경석 목사님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서 목사님과는 가까운 선후배로 지내게 되었으니 만남이란 참으로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당시 내가 상대하던 이들은 서울 출입국관리소, 경찰청 외사계 등 정부와 정보기관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만난 몽골 자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는 문민정부 시대였으므로 비록 경실련을 점거하고 농성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외형적인 모습일 뿐, 실제로는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주민 문제를 한 단계 높이는 길을 모색하는 일종의 대책회의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에 만난 분들 중 출입국관리소의 직원 한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나중에 그 몽골 자매와 이란 형제를 만나게 해주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만남 이야기는 내가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앞서 저술한 책 나그네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에서도 언급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하겠다. 다만 그들의 짧은 만남을 주선하고 나는 몽골을 얻었다. 몽골 자매 엥케가 내게 몽골을 선물해 준 것이다. 그 다음 주부터 엥케는 우리 선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고 많은 몽골인들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그 때부터 우리 선교회에는 다른 외국인들보다 몽골인들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

 

마태복음 25:31-40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25: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25: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25: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25: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25:36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25: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25: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25: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25: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25: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예수 자신에게 한 것이라 하셨던 말씀은 언제나 진리다. 감옥에서, 나그네들의 틈에서, 또는 고통 받는 우리의 이웃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런 고통 받는 이들 속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은 자들 속에 예수가 계시고 그 가운데 찾아가는 인간의 사랑과 섬김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처음 몽골을 만난 것은 그런 감옥이다. 외국인 보호소는 외국인들의 감옥이다. 불법 체류를 하던 이들이 붙잡혀 들어가는 곳이 외국인 보호소다. 그곳으로 찾아간 것은 실로 놀라운 사건이다. 몽골 자매를 데리고 이란 형제를 만나기 위하여 휘경동 외국인 보호소까지 찾아갈 엄두를 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감동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그곳은 쉽사리 갈 수 없는 곳이다. 불법 체류라는 딱지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이다. 누가 불법 체류를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불법 체류를 하다가 붙잡히는 날이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난다. 한국에 들어올 때에 브로커 비용 등 엄청난 돈을 들여 한국에 들어와 그나마 돈을 벌다가 불법 체류로 붙잡혀 고국으로 강제출국을 당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죽음만큼이나 절망적인 일이다. 그래서 불법 체류자에게 외국인 보호소는 가장 무서운 곳이다. 그곳에 붙잡혀 들어가면 한국인 어느 누구도 그들의 신변보호를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나중에 그곳의 소장님이 내게 하신 말씀 중 한마디는 대통령이 오셔도 결코 불법 체류자의 신분과 그들 간의 면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는 무식하게 도전했고 불법체류의 신분이었던 그 몽골자매와 이란형제의 만남을 주선했으니 나는 용감함을 넘어 무식한 사람인 것이다.

그 만남의 주선은 몽골 자매가 교회에 나오는 동기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그 몽골자매의 전도로 엄청난 몽골인들이 우리 공동체를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이 역사를 바꾼다. 작은 사랑의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작은 한 만남이 한국과 몽골의 역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그렇다. 세상은 그렇게 작은 사랑의 실천으로부터 변화하고 역사는 무심결에 나눈 섬김과 나눔으로부터 새롭게 씌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작은 자들을 예수를 섬기듯 귀하게 섬겨야 하는 것이다.

 

 

창세기 19:1-3

19:1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19:2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19:3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히브리서 13:1-2

13:1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13:2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선교는 작은 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 나그네를 순례자로 만드는 것이 선교라 한다면 그 접촉점은 우연한 만남에서부터다. 천국이란 작은 누룩이 넓게 번져가듯 미미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이러한 작은 만남으로부터 큰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다. 여기에 소개하고 싶은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분은 할렐루야 교회의 이수미 권사님이다. 이 권사님을 만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1996년 어느 날인가 나는 성남의 한 외국인 사역지를 방문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19939월에 한국교회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의 초대총무로서 이주민 사역지를 방문하고 실태를 조사하였으며 그들의 사역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사역을 하였다.

사역지들을 찾아 방문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서로 연대하여 해결해 가는 것이 내 사역이었다. 그때에 성남지역에서 이주민 사역을 하던 이는 감리교의 지인식 목사님이다.

지 목사님은 나보다 연배가 한 열 살 쯤 선배였는데 감리교는 물론이고 한국교회에서 이주민 사역을 먼저 시작한 사람 중 한 분이다. 그는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지금은 한국에 없지만 그의 역할은 이주민 선교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어느 날 내가 그 분의 사역지를 찾아갔을 때 이수미 권사라는 분이 그곳에 계셨다. 권사님은 당시에 양평에 있는 아시아연합신학대학에서 선교학으로 석사논문을 쓰고 계셨는데 그 논문을 쓰기 위하여 지 목사님의 도움을 받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만난 이 권사님과 논문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것이 권사님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 권사님은 가끔 우리 공동체가 있었던 성수동으로 찾아 오셨는데 그때에 내가 할렐루야교회를 알게 된 것이다. 권사님은 할렐루야교회와 우리 공동체를 연결하신 분이다. 권사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우리가 힘들고 가장 어려울 때마다 권사님을 통해 받은 사랑이 너무도 크다.

나는 지금도 우리 스탭들에게한 사람이라도 결코 소홀히 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전부다. 한 사람이 역사의 시작이며 그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그와의 만남이 내 인생을 바꾸고 내 사역지를 만들어간다. 그가 누구든 혹시 길가는 나그네이거나 노숙자이더라도 그에게는 하늘의 섭리가 있고 뜻이 있으며 그가 천사이고 예수다.

 

그러므로 나그네를 섬기는 사람에게 만남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만남의 소중함을 경험했고 결국 그 만남으로부터 하나님 나라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엥케자매와의 만남 이후 우리 공동체는 엄청난 몽골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나의 첫 번째 책에도 언급되었던 언청이 아이 톨가부터 나중에는 몽골의 오느드르라는 신문에 기사가 실렸을 정도다. 그 기사의 내용인즉 한국에 가는 몽골인들은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 있는 외국인 공동체를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우리 공동체에는 몽골인들이 공항으로부터 짐을 싸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짐 꾸러미가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득 채워진 적도 있었다. 그만큼 몽골인들이 우리 공동체의 주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때까지 주류였던 네팔인들과 필리핀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몽골인들은 정말 체력이 강하다. 추위도 먹는 것도 문제가 없다. 그들의 식성과 힘은 타고난 것이다.

하루에 라면 한 박스를 사다 놓아도 하루살이 신세였다. 갈 곳이 없는 이들은 우리 공동체에서 하루 종일 머물다 돌아가곤 했는데 그때 나는 그들과 거의 일 년 동안 라면만을 먹고 살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라면을 끓여 김치를 조금 얻어먹으려다가 도둑 누명을 쓴 적도 있었으니 그것은 정말 웃음밖에 안 나오는 일이다.

 

그렇게 몽골인들은 내 사역과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시작한다. 나도 그들과의 만남에서 새로운 희망과 에너지를 찾아갔다. 그때만 해도 이주민 사역을 그만 두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척 힘든 때였지만 몽골과의 만남은 내게 새로운 의미를 던져 주었다.

내가 몽골의 엥케자매와 만나고 그녀의 아픔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인 그 일로 나와 우리 공동체는 몽골이라는 나라를 얻었다. 상사병 걸린 작은 몽골 자매와의 우연한 만남이 몽골이라는 나라를 한국에 붙여 주신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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